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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나를 보며 울길래 고양이가 운다. 많아봤자 하루에 함께 보내는 시간은 10시간 남짓. 눈 감을 때까지 머리맡을 지켜주다, 눈 뜨면 발치에 있다. 샤워 후 머리를 털고 노트북을 열면 책상 언저리에서 운다. 그 눈동자를 독해하는 건 쉽지 않다. 고양이는 늘 필요할 때만 울기 때문이다. 나를 호출하는 이유를 알려면 그 눈동자를 한참 들여다봐야 한다. 가끔은 키보드 위에 앉아버린다. 보란듯이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쳐서 떨어뜨려버린다. 비싼 향수를 여러 병 깼다. 나는 어떤 향수병이 튼튼한지 이제 안다. 하찮은 인간들이 고양이의 자그마한 우주에 늘 똑같지 않은 유일한 풍경이란 건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 인간들은 너무 하찮은 존재라 그걸 잘 잊어버린다. 늦은 새벽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온 집사를 보는 한심한 표.. 더보기
<빌리언즈> 보는 중 넷플릭스에서 요즘 '이것만' 본다. 오랜만에 정신 못 차릴 만큼 쌔끈한 미드를 발견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알아요? 라고 물어본다. 정치 법정 스릴러에 '헤지펀드'만 얹었는데도 신선도가 확 올라갔다. 미국 CBS 코퍼레이션 케이블 채널 '쇼타임'에서 시즌 4까지 방영됐다. 아담 맥케이 2015년작 를 그리워하는 이들이라면 200% 이상 즐길 수 있을 거라 본다. 찾아보니 트위터 등지에서 17년부터 알음알음 국내 시청자들에겐 알려지고 있는 듯. 나는 이제 시즌2를 막 다 봤다. 예전처럼 한 번에 전 시즌을 섭렵하거나 하는 건 체력적으로 매우 지침 ㅠㅠ 불가능 전체 시놉은 월스트리트의 전설이 된 사모펀드 매니저와 그의 불법 내부 거래를 색출하려는 뉴욕 남부 검찰청 검사장의 지략대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금.. 더보기
구독 요청을 받은 날 새로운 삶을 막 시작하는 친구의 첫 걸음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누구 말마따나 한국인들이라 약속을 퍽 잘 지켜서인지, 유독 사랑스러운 이 친구의 시작을 응원하는 이들의 진심이 모아져서인지 밤 9시가 넘어서자 기약했던 이들이 거진 전부 다 모였다. 얼굴들이 닮았다. 신기한 점이었다. 친구의 어떤 일부를 조금씩 다 닮아있는 이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다소 나른해보이는 분위기도, 집시 같은 자유분방함도,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열려 있는 넉넉한 틈도. 어딘가 익숙한 면모들이 있어선지 분명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이들인데도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는 미러볼이 돌아가는 방에서 "어떤 글을 쓰더라도 난 네 글을 꼭 구독할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이젠 제발 글 좀 쓰라는 .. 더보기
길모어걸스 한 해의 스케치(201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타이틀 글씨체를 꼭 저랬어야 했을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망설이다 결국 마트에 가서 술을 잔뜩 사왔다. 맥주 네 캔에 화이트 와인 한 병 그리고 막걸리 한 병까지. 저녁을 대충 감자칩과 맥주로 떼우려고 했는데 결국 와인 한 병도 뽀갰다. 사실 길모어걸스를 선택한 데에 큰 의미가 부여된 건 아니었다. 유년이라면 유년이었을 세월을 정리해야 한다는, 그래서 지금 내가 있기까지 적잖은 영향을 준 그 시리즈의 마지막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류의 의미 부여 따위도 없었다. 내 시간을 죽이는 데 일조해왔던 넷플릭스 메인페이지에 나도 모를 복잡한 알고리즘을 거쳐 이 시리즈가 표출돼 있었을 뿐. 90분 남짓한 에피소드 네 개로 이뤄진 고작 1년간을 다.. 더보기
예전의 글들이 주는 교훈 스트레스의 강도를 측정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얼마나 단기간에 집 안에 새로운 수첩과 볼펜 등 문구류가 쌓이는지를 보면 된다. 그 어느 날 서울 땅을 처음 밟고 핫트랙스라는 문구점의 존재를 깨달았던 시절부터 지금껏 나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잔뜩 쌓인 수첩과 볼펜 더미를 기웃기웃하고 있다. 손으로 쓸 거리를 잡고 왼손으로 누른 종이류에 서걱서걱 내 흔적을 기록하는 일. 나에게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건 곧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줄곧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새로운 마음을 먹자 다잡을 때마다 일기를 쓰던 버릇은, 씀씀이가 조금 커지고 난 뒤부터는 곧 펜이나 수첩을 새로 사는 버릇으로 바뀌었다. 일주일 하고도 반 전에 새로 샀던 아이보리색 수첩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름조차 써넣.. 더보기
남들이 보고 싶어하는 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대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아직도 엑셀을 맘대로 하지 못하잖아? 생각만큼 능력치가 발전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다. 평생 콤플렉스가 따를 수밖에 없는 직업을 아주 오래 전부터 선택해놓고 이제와서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있는 게 웃기긴 하다. 하지만 생각없이 들뜬 마음에 살던 얼마간이 지나고 다시 스트레스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은 이제는 드디어 본 궤도에 안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맘 한쪽에선 (변태같게도..) 다행스런 느낌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기초, 바탕, 본령, 초식 따위를 들먹이고 언급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떤 콘텐츠를 내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일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 있는 부서에 오고나서.. 더보기
매순간이 기회비용 남기지 않고 뭔가를 모두 챙기기 위해서는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어떤 것이라도 희생해야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그랬다. 오후 리포트가 있었지만 놓치기 아까운 약속 때문에 무리했다. 오디오 읽을 조용한 곳 찾기가 고역이었다. 새 립글로즈까지 샀지만 직원 전용 룸을 열어주지 않았던 매몰찬 화장품 가게 덕에 추운 길거리를 십여 분간 헤맸다.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착하게 생긴 약사님이 운영하는 약국 안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후닥닥 읽었다. 약국 안에 가만히 앉아있던 손님 한 명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계속 쳐다봤다. 저분들은 아마 한동안 내 동충하초 기사를 잊지 못할 거야. 집에 가서 회사와 동충하초 검색어를 한번씩 쳐봤겠지. 오늘 난데없이 뛰어 들어온 불쌍해 보이던 처자가 이 양반이었구나, 하고. 사회.. 더보기
김명인 교수의 '여성혐오' 관련 포스트 발췌 한국남성들의 절대다수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라고, 혹은 열등한 존재여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여성을 일상적으로 비하하거나 적대시하는 경우만이 아니다. 그 여성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많은 성취를 하고 심지어 명백히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존중한다고 하는 경우건,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경우건, 매너가 좋은 경우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경우건 다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건 한국남성에게 여성은 쉬운 존재이거나 쉬운 존재여야 한다. 10대에서 80대까지 연령과 세대에 관계없이 동성애자가 아닌 한국남성들의 절대다수는 많건 적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40대 전후의 ‘젊은 여성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그렇다. 그것은 말이 좋아 대상화이지.. 더보기
편지가 와르르르 수습 때 사다놓은 핸즈프리 블루투스를 찾아 이리저리 서랍을 뒤졌다. 이사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서랍정리는 엄두도 못 냈다. 기기가 있을 만한 서랍을 헤집어보니 작은 종이가방에 넣어 둔 편지 꾸러미가 나왔다. 대학시절 다정한 글씨로 꾹꾹 눌러 써내려간 편지와 엽서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지나간 추억은 왜 이렇게 다 귀여울까. 글씨마다 박제된 그때 그 사람들의 얼굴도 생각이 나고, 저마다 다른 개성이 뚝뚝 넘쳐흘러 슬몃 웃음이 난다. 하마터면 가슴이 서늘할 뻔했던 두터운 편지들도 하나하나 넘기며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모든 편지들을 애써 버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많이 자랐구나. 위로가 돼 주어 고맙다는 수 년 전의 글씨들이 오늘 내 마음에 큰 위로. 어딘가 버리지 않은 편지들 틈에 있.. 더보기
기법보다 관점 우리는 서로를 무시한다. 논설을 프로파간다라 비판하고 스트레이트를 영혼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논설을 자유롭게 파생시키는 스트레이트가 옳은 것일까. 스스로가 논설을 담은 스트레이트가 옳은 것일까. 나는 물론 아직은 이 고민들에 답을 명쾌하게 내리진 못하겠다. 공개되지 않은 사실을 처음으로 완벽하게 파악하고 보도하는 것? 접근이 어려운 민감한 정보를 파악해내는 것? 아니면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해내는 것? 흔히 '출세작'을 쓰는 기자들은 위와 같은 것들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엇이 옳으냐'는 대답과 별개로 최소한 분명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모두 '기법'이라는 것이다. 기법에 능한 기자들은 세상을 들썩이게 할 '출세작'을 쓸 가능성이 높다. 자생능력이 부족한 저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