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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쉽지 않은 나날들

쉽지 않은 날들이 거듭되고 있다.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사실 생각을 놓고 다니는 것인지, 생각을 하지 않고 다니는 것인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지도 헷갈린다. 평범한 일상을 희구하지 못한지 2개월이 넘었다. 기자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적어도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에 충분히 순응할 수 있는 인성을 타고나야 한다. 하루 많아도 두시간 남짓 잠을 자고서도 이 생활이 가능한 것은 선배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나 자기 스스로의 확신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위력적으로 이 생활에 길들여질 수 있는 사람들이 기자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를 위해서는 이 강력한 상명하복식의 위계질서를 수긍하기 위한 근원적 차원의 설득이 필요하다.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라든지, 기자가 되기 위해 내키지 않아도 필수불가결하게 따라야 할 절차라든지. 갖가지 방식으로 어떻게든 기존 질서에서 탈주하려고 하는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가 있다. 선배들 사이에서 내 별명이 '정판단'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말 자체로는 크게 나쁘지 않은 어감을 주지만 실은 치명적인 평가가 담겨있는 별명이다. '내 말을 안 듣는다'는 평가만큼 더 혹독한 평가가 있을까. 고함을 지르거나 귀를 때리는 쌍욕을 뱉기도 하고 웃으며 어르고 차근차근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선배들은 아직 그나마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편이다. 언젠가 수습 딱지를 뗄 날이 오면 '시련'으로 포장된 관심은 따가운 평가로만 남게 될 것이다. 선배들의 인성을 신뢰하고, 그들이 내 시절에 겪었을 모든 시련들과 고민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 에고가 너무 강하다는 것? 실천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 지행합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아니면 머리가 나쁘다는 것? 


가끔 더 높은 선배들에게서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생활의 의의에 대해 들을 때가 있다. 국민이라는 말이 오르내린다. 대변자라는 말이나 감시자라는 말도 오르내린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의 하루 일과들에 대한 자부심이 반짝 끓어오르기도 하지만 거절의 상처에는 도무지 익숙해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적응해가나 했던 라인에서 벗어나 새 라인을 처음 배정받았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조금 더 능글맞아질 수는 있어도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익숙해지기는 불가능한 직업이다. 


매 순간 능력을 시험받는 조직에 몸 담게 됐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이 조직은 남들이 2명이 하는 일을 한번에 처리하지 못하면 쉽게 버티기 힘든 곳이다. 한동안 선배들이나 회사의 풍경을 지켜보며 머릿속에 두둥실 떠올랐던 '긍지이자 절망'이라는 구절이 떠나질 않는다. 감탄한 만큼 나도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다. 생각을 오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이 곳에서 나는 상처든, 뭐든 빨리 부딪혀 돌파해야 한다는 매순간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2시간 단위의 시한부 인생을 어떻게 조율하고 배치할 것인지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어이없게 동선이 꼬이기도 하고 택시비 지출이 엄청날 경우도 있다. 정신이 빠져서 멍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스스로의 무능에 대한 통렬한 자괴가 찾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이 자괴감에도 익숙해지게 된다. 이 일은 나에게 지나치게 버거운 일일까? 


'단독'이라 불리는 것을 세 번 정도 했다. 처음 두 번은 운이 좋았고, 세 번째는 내가 뿌듯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단독'이었다. 이 소중함과 감사함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살 것이다. 그러나 어제 선배가 나를 훈육하며 했던 말처럼 지금 기간 최우선 과제는 능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이 생활에 연착하기 위한 상처를 모조리 다 겪고 미리 굳은 살을 만드는 과정이다. 한 건하겠다는 마인드를 버리고 꾸준히 하겠다는 심정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존감도, 자존심도, 판단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게 내가 조금 더 이 생활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막 새로운 지시가 떨어졌다. 지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 곳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을 몇 주 안에 모두 파악해내야 한다. 마음도 얻고 정보도 얻는 것이 쉽지는 않다.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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