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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매순간이 기회비용

남기지 않고 뭔가를 모두 챙기기 위해서는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어떤 것이라도 희생해야하기 마련이다. 

오늘도 그랬다. 오후 리포트가 있었지만 놓치기 아까운 약속 때문에 무리했다. 오디오 읽을 조용한 곳 찾기가 고역이었다. 

새 립글로즈까지 샀지만 직원 전용 룸을 열어주지 않았던 매몰찬 화장품 가게 덕에 추운 길거리를 십여 분간 헤맸다.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착하게 생긴 약사님이 운영하는 약국 안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후닥닥 읽었다. 

약국 안에 가만히 앉아있던 손님 한 명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계속 쳐다봤다. 

저분들은 아마 한동안 내 동충하초 기사를 잊지 못할 거야. 집에 가서 회사와 동충하초 검색어를 한번씩 쳐봤겠지. 

오늘 난데없이 뛰어 들어온 불쌍해 보이던 처자가 이 양반이었구나, 하고. 


사회인으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합리적 경제인이 되기 위한 분투의 연속인 것 같다. 

계속 가치를 재는 일들이 내정돼 있다. 적절한 타이밍, 하루동안의 동선, 남은 일과 쓸 수 있는 비용의 한계,

만나는 취재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간, 그를 위해 들여야 할 에너지. 

터무니없이 한정된 재화가 바로 시간이기 때문에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는 난처함에 처한다.


그래도 꽤 복잡한 미로처럼 설계된 이 쳇바퀴를 계속 돌 수 있는 것을 보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나를 그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결정적인 도움이든, 작은 위로의 인사든, 빵 터지는 유머로 배꼽을 잡게 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주었든.

불쑥 불쑥 이는 마음 역시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감사와 미안함은 그때그때 전해야 한다는 

진부한 진리를 이렇게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감사는 제때. 미안함은 더 제때. 어느때고 빚지고 살고 있음을 떠올려야 한다. 


내가 아는 소위 능력있고 인정많은 누군가들이 가장 쉽게 포기해왔던 건 '자신의 시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하나하나 다 챙기지 싶었던 사람들은 역시나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못했다. 

누군가는 항상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아버지, 자식이나 형제 그리고 친구일텐데, 

그것들을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직분'에도 충실하기 위해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른 창구를 마련하는 동시에 

잠부터 줄여야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슬픈 일이긴 하지만 어찌보면 퍽 당연한 얘기. 


책을 읽는 건 언제나 즐겁다. 특히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느꼈을 때, 또는 많은 영감을 주었을 때. 

그러나 책 읽는 기쁨의 팔할 이상이 그 책을 읽고 쓸 글, 또는 정제된 나의 해석의 야마가 그려질 때인 걸 보면 

역시 활자와의 대화보단 사람과의 대화가 난 더 좋은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생경한 또는 조금 씁쓸한 건 예전만큼 '책' 자체가 주는 효용이 크지 않다는 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읽으며 느끼는 보람보다 이 시간에 운동을 했으면, 또는 이 시간에 피부를 더 가꿨으면

또는 이 시간에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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