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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더 강한 건 언제나 행동 그러나 행동하기 위해 말이 앞서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느낄 때. 말은 계획짜는 것을 돕고, 행동에 사명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머릿속에 떠오른 아주 간단한 한 문장으로부터 책 한 권이 나올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항상 버지니아 울프의 첫 문장이 자동으로 소환된다. "꽃을 사야겠어"라고 댈러웨이 부인은 말했다. 한 문장 안에 무조건 심오한 내용을 담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이 한 마디로부터 캐릭터에게서 가장 단순한 열망을, 그리고 그 다음 무슨 행동을 할지에 대한 가장 확고한 대답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계에 무엇이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시작'.. 더보기
여의도에서 새벽부터 빠듯하게 준비했던 기사가 빠졌다. 그래도 일은 남아 있어서 마무리할 겸 적당한 보금자리를 두리번댄다.여의도는 적당히 좋은 곳. 몇 미터 근방 국회에는 또 여럿이 정신없이 여럿의 뒤를 따라붙으며 키보드를 쪼작이고 있다. 변화무쌍함은 내 직업의 천형, 그래도 요즘은 많이 적응됐다. 선배들은 가끔 날더러 왜 그렇게 이상하게 침착하냐고 그런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뭔가를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침착해진다. 새벽에 그날 격파해야 하는 테스크들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그려지면 나도 그렇게 침착하지만은 않은데. ㅎㅎ손에 잡히는 순간까지 초조한데 겉으로 별로 드러나진 않는 모양이다. 단점은 아니다. .... 라고 쓰던 중 전화와서 지시가 떨어졌다. ㅋ .... 더보기
소년의 죽음과 멜랑콜리 7살 신원영 군이 끝내 죽은 채로 발견됐다. 3월이 왔지만 봄이 오지 않은 평택의 동토에서,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왼쪽 이마에 거즈를 붙인 채로 옆으로 고꾸러져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했다. "경찰 생활 하면서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 사건은 처음이었어요." 경기도 평택서는 강력 사건들이 그래도 좀 있는 경찰서다. 미군과 관련한 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세상 이목을 집중시키는 몇 사건들로 그래도 기자들을 몇차례 치러 본 베테랑 형사들이 포진해 있다. 한숨을 연달아 푹푹 내쉬는 강력반 형사들의 목소리가 괜히 떨리는 게 아니었다. "살해는 안했어요"라고 말했던 여자와 책임감 없던 아버지가 끝내 어린 소년을 땅에 파묻었다. 얼어붙은 땅에서 발견된 원영이는 발견된지 하루만에 조촐하게 화장됐다. 어린 소년은 끝까지 추웠.. 더보기
요즘 단상 1. 글을 쓸 때는 타박할 것 투성이다. 손이 시려워서, 발이 시려워서 글을 쓰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의자가 지나치게 작아서, 또는 높아서 또는 헹거에 옷이 너무 많이 걸려 있는 바람에 주의가 사나워서, bgm으로 틀어놓은 킹스오브컨비니언스의 곡들이 너무 졸려서 등. 그냥 갖다댈래도 상상력이 부족해 대지 못할 온갖 핑계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수많은 '리포트'라는 걸 제출하며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던 학사의 견지에서 이러한 갖가지 잡다한 타박과 핑계들은 '좋은 시작'일 수 있다. 글을 쓰려는 찰나, 마침내야 생각이 시작됐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자정을 넘기지 않고도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하다. 남는 시간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활용.. 더보기
기획서 쓰다가 가끔 너무 완고해 취재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해도 만나고 나면 슬몃 미소가 지어지는 이상한 취재원들이 있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런 취재원들이 순간마다 겪는 회의감을 극복할 수 있는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기사를 쓸 때면 뚜껑을 열었을 때부터 아예 쓸 수 없는 이른바 '얘기가 안 되는' 기사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제외했을 때 기사를 썼을 때 누군가의 로스와 사회전체적인 편익을 따지는 '저울질 해야 하는' 기사, 그리고 쓸 것이냐의 기로에서 '순전히 의지에 달린' 기사들이 있다. 기사쓴지 1년 채 되지 않았지만 난 저 세 가지를 다 써본 것 같다. 세 가지를 쓰기 전에 할애하는 고민과 시간에는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다. 정도의 차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테크닉도, 이데올로기도 부족하다. 사회 첫 발을 .. 더보기
이것 저것 요즘 사는 이야기 오랜만에 이틀 모두 쉴 수 있는 주말이 오면 금요일 밤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급속도로 추워진 날씨 탓에 마침 적당히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을 하던 차였는데. 어제는 오늘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쇼핑몰을 걸어다니고 카페에서 소설을 한 권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온수매트를 샀다. 새 이불 시트를 꺼내 깔고, 온수매트를 설치하고, 이불을 덮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내 방을 보는 것은 지금 현재 내 삶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행복의 요소다. 마트에서 사온 적당한 와인을 따고, 모 선배가 선물해 준 서경식 교수의 에세이를 몇 장 읽다 따뜻하게 잠들었다. 오늘은 서늘한 감촉의 공기가 뺨에 닿은 뒤 파란 하늘을 보며 눈을 떴고 저녁 약속을 나가기 전에 이불 빨래와 옷장 정리를 할 생각이다. 객.. 더보기
심보선 시인의 현명함 대학신문 2012년 3월 기고 멋지게 살려하지 말고 무언가를 이루려 해라 아버지와 막스 베버의 충고 내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말이 하나 있긴 있는데, 이 말은 책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말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내게 말씀하셨다. “멋지게 사는 건 너무나 쉽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는 것 그게 정말 어렵고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멋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아들아, 나는 실패자다. 명심해라. 멋지게 살려하지 말고 무언가를 이루려 해라.” 나는 이 말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떤 말로도 아버지를 위로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냉정.. 더보기
편지를 쓰고 싶은 호텔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훌륭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처음 들어왔을 때 알싸하게 코를 스치던 특유의 시그니처 향과 정갈하게 깎아놓은 연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깨끗한 종이와 결을 따라 예쁘게 깎아 놓은 연필을 보니 절로 책상에 의자를 바추 당겨 앉아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든다. 만년필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나는 깨끗한 종이에 서걱서걱, 글자를 쓰는 펜 소리가 좋다. 캐런 앤의 앨범을 틀어 놓았다. C가 추천한 Josh Rouse의 앨범은 도착 첫 날 주구장창 들었고, 지금은 Acoustic cafe의 앨범과 캐런 앤을 번갈아 듣고 있다. 회사 MT 게임 상품으로 받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꽤 쓸 만하다. 샤워를 할 때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쇼파에 기대 책을 읽을 때나.. 더보기
졸업식에 다녀왔다 졸업식에 다녀왔다. 왁자지껄, 한바탕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서 지난 2월이 불쑥 떠올랐다. 딱 여섯 달 전 내가 저들처럼 졸업 가운을 두르고 꽃다발을 손에 안은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렇지만 갑갑한 마음으로 점심밥이 도저히 목 뒤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거다. 손에 꽃다발을 쥐고 사진을 찍다가도 두 시간에 한번씩 소방서에 전화를 돌리고 선배에게 보고하는 나를 친구들이 신기하게 쳐다봤었다. 추웠다. 오늘은 K의 졸업식이었다. 어젯밤 41층 꼭대기에서 황홀한 야경을 바라볼 동안 이미 오늘의 꽃순이는 나로 정해졌다. 아침 일찍 신촌으로 가 예쁜 꽃을 질렀다. 돈을 벌어서 좋은 건 이런 것이다. 예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말이 나온 .. 더보기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팽팽한 이때, 어제는 오랜만의 휴일을 즐기겠다고 오전 나절부터 집을 나섰다. 사람이 이렇다. 기자라도 별 수 없다. 오전부터 정치부 선배들이 이것저것 챙겨 올리는 취재정보를 보고 있으면 이 갈등도 금세 다 봉합될 것 같다. 눈빛을 나눴던 삼곶리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아직도 그곳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고 해서 바로 교전이 일어나는 뻔한 결과는 없을 거라 믿어본다. 어제 나눴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준비하던 시절 만큼 내가 기사와 취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뼈아픈 각성을 했다. 노력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S는 말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 S의 화법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