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5분 동안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wichin
2014. 7. 16. 22:51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이어트에 대한 스트레스를 의식적으로 경감시키고자 머릿속에 떠오른 논리가 있었다.
독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생명의지에 준하는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이어트라는 건 반드시 다이어트해야 한다는 벼랑 끝의 마음이 아니라면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 도처에 유혹거리가 널려있다. 유혹이 아니라도 습관을 바꾸는 데는 꽤 대단한 각성이 필요하다. 늘 의식하고, 긴장하지 않으면 고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아직 원하는 만큼 충분히 살을 빼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애석함도 있지만 이것은 한편으로 낙관적인 해석일 수도 있다.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것만해도 상대적으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다는 증거기도 하다.
그러나 모퉁이를 돌자마자 반박 논리가 퍼뜩 떠오르고 마는 것이었다. 스트레스와 행동할 수 있는 의지가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게임해서 죽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향으로 실천하진 않는다. 즉, 다이어트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뿐 스트레스를 충분히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