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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기사

9월 24일자 사설

엄청난 싱크빅이라 읽다가 숨이 막혔다. 논지대로라면 현재 국내 총생산의 4%에 가까운 예산이 사용되는 출산장려금을 다른 곳에 투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산장려금이 도입된지 길어야 10년도 되지 않았다. 지원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정책 효과의 기대치 산정 작업 복기부터 지원 예산의 적절성까지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출산장려금이 출산을 '장려'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해서 이 '장려'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고는 명백히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이자 인과의 오류다. 인구가 국가 존속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은 꺼내기조차 망설여지는 진부한 사실이다. 출산은 개별 시민이 자발적으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 재생산하겠다는 의지가 투영돼 있다는 점에서 한 국가가 추구해야 할 복지정책 일반의 목표다. 복지는 한 인간의 탄생부터 성장, 자아실현과 소멸까지의 전 과정에 걸쳐 이뤄진다. 인간이 전 생애에 걸쳐 "잘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조력하는 것이 곧 복지다. 출산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살아볼 만하다'는 확신을 가진 한 인간이 공동체의 미래에 가장 깊숙하게 개입할 수 있는 선택이다. 어쨌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구가 중요하고, 50조를 때려 넣을 예정인 출산장려금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출산을 통한 인구 재생산은 포기하고 외국에서 젊은 인재를 데려오자는 사고는 도무지 '공동체의 존속'을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단기간에 더 많은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비를 외국에서 사오자는 말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민 정책에 유연해지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폭력을 배태한 실체없는 민족주의를 내려놓을 때가 됐다. 그러나 이 '유연한 이민 정책'이 단순히 기업들의 M&A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에게 플러스가 될 '고학력 인재'만 포용하고, 마이너스는 가려내야 한다는 사고는 엉뚱하게도 극단적인 민족주의와도 상통할 수 있다. 이는 온전한 '포용'이라 할 수 없다. 너는 밥값을 하지 못하니 그만 우리 구성원에서 나가라고 하는 가족이 일반적인가? 국가의 존속이 '부'의 원활한 축적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헌법 1조 2항이 분명히 말해준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의 1차적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 돼야 하고, 이때의 행복은 전체 국부의 증가만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아이 낳기를 포기한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출산은 이렇게 쉽게 포기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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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후인 2020년에는 1인 가정이 전체의 30%를 차지해 가장 보편적인 가구형태가 된다는 취재 결과를 내놓았다. ‘출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에 60대는 50%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20대는 14%만 동의했다는 면접조사 내용도 기사화했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재빠르게 알아채 대처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는 인구정책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다. 1980년대 중반 출산율 상승세가 급격히 꺾이는데도 강도 높은 출산억제 정책을 유지했고, 90년대 중반 출산율이 뚝 떨어진 뒤에야 출산장려 정책을 썼다. 지금은 2006년부터 출산장려·보육지원 등을 근간으로 한 ‘새로마지플랜’이 시행 중이다. 내년까지 10년간 50조원을 쓴다. 하지만 최근 10년 새 합계출산율은 1.18에서 1.19로 제자리걸음을 했다.<그래픽 참조> 인구정책의 큰 틀이 잘못돼 있지 않은지, 원점에서 점검해야 할 때다.


인구변동은 불가역성(不可逆性)이 강하다. ‘저출산·저사망’ 단계에 접어들면 좀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출산장려 정책을 아무리 써도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 프랑스에서 출산장려 정책이 일부 성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4%에 가까운 예산을 써서 출산율이 찔끔 올랐다면 우리가 이를 따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의 인구정책은 저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막겠다고 여긴다. 삶의 질을 높이고 노동생산성을 올리며 환경을 깨끗하게 할 기회로 보는 시각은 미미하다. 하지만 우리가 애를 써도 인구대체율 2.1(여성 한 명이 2.1명 출산)에 도달할 수 없는데, 천문학적인 재정을 써도 효과가 미미한데 출산 장려에 ‘올인’할 이유는 없다. 출산장려금 지급같이 일시적인 양적 정책을 버리고 인적자원의 질을 높이는 질적 정책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빈곤아동 100만 명, 그만큼의 불우청소년을 잘 보듬어 안는 데 힘을 쏟고 재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며 해외에서 젊은 고학력의 외국인이 유입될 수 있도록 이민제도를 손봐야 한다.


1인 가구 비율이 47%인 스웨덴은 ‘싱글 패밀리’에 맞춰 공공주택을 짓는다. 원룸을 제외하고 주방·육아장소 등을 함께 쓰도록 주거공간을 배치해준다. 일본은 독거가정에 맞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우리보다 수십 년 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나라는 인구정책의 기조를 저출산 ‘대응’에서 ‘적응’으로 바꾸었다. 우리도 신(新)인구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인구감소시대에 맞게 정치·경제·사회의 틀을 다시 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