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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고양이가 나를 보며 울길래

고양이가 운다. 많아봤자 하루에 함께 보내는 시간은 10시간 남짓. 눈 감을 때까지 머리맡을 지켜주다, 눈 뜨면 발치에 있다. 샤워 후 머리를 털고 노트북을 열면 책상 언저리에서 운다. 그 눈동자를 독해하는 건 쉽지 않다. 고양이는 늘 필요할 때만 울기 때문이다. 나를 호출하는 이유를 알려면 그 눈동자를 한참 들여다봐야 한다. 가끔은 키보드 위에 앉아버린다. 보란듯이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쳐서 떨어뜨려버린다. 비싼 향수를 여러 병 깼다. 나는 어떤 향수병이 튼튼한지 이제 안다. 

 

하찮은 인간들이 고양이의 자그마한 우주에 늘 똑같지 않은 유일한 풍경이란 건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 인간들은 너무 하찮은 존재라 그걸 잘 잊어버린다. 늦은 새벽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온 집사를 보는 한심한 표정을 금세 잊는다. 

 

고양이의 사랑하는 방식은 감동을 준다. 취하기 위해선 반드시 어떤 것이든 팔아야 하는 '생활'엔 도통 관심이 없다. 그 순도 높은 무관심. 종종 '도도함'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그건 사랑이다 내가 알어. 마치 백퍼센트 존재로서 이해받는다는 느낌이랄지. 종종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내 어깨에 턱, 솜뱅맹이를 올려놓는다거나 할 때 아니 그보다도 많은 순간 불쑥 나는 그런 감동을 느낀다. 내 집에 있는 것들 중 몇 안되는 완전한 것이다. (나는 그러면서 뿌듯한 마음으로 발바닥을 만지다 얻어맞는다) 

 

가끔 연락하면 안될 사람에게 연락하고 싶을 때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서 중요한 게 어떤 것일까라는 답 없는 질문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에도 고양이가 나를 보고 야옹 울면 재빨리 화장실 모래를 퍼다 버리거나 밥을 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샤워 후 머리를 털면서 노트북을 열었는데 나를 보고 고양이가 야옹하고 울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