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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스타일



지구 영웅전설

저자
박민규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3-06-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지진아 초등학생인 ‘나’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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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소설은 인기가 많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며 부끄러운 듯이 말하는 친구들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한국 소설로 박민규를 제법 꼽는다. 노란색 표지의 카스테라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작은 시립 도서관, 구립 도서관, 초등학교 도서관과 심지어 동네 의원에서도 박민규 소설을 늘 발견했다. 소설이 한 권이라도 있을 자리엔 어김없이 박민규의 소설이 있었다. 가끔 궁금했다. 박민규 소설은 어쩌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한 소설이 되었을까.

 

지구영웅전설은 지구영웅전설기다. 문체는 경쾌하고 형식은 전복적이다. 유쾌한 입심을 펼치는 작가의 외양 역시 예사롭지 않다. 책날개엔 커다란 고글을 쓰고 장발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남자의 사진이 있다. 만화 깨나 봤을 것 같은 모양새다. 첨부된 수상소감과 하성란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마블과 DC 만화 따위에 관심도 없었다는 작가의 변을 보고 의외라 생각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각종 무협지와 고래의 전설들을 섭렵하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유에프오를 찾는 괴짜의 이미지. 사진 한 장에 너무 많은 것을 연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박민규와 그의 소설은, 썩 잘 어울린다.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박민규의 이야기들에는 뚜렷한 그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거침없이 상상하지만 그 탁월한 입심이 상상력을 허황되지 않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들이 무대에서 황당한 연기를 펼친다. 배트맨은 포악하고 로빈은 상처입었고 슈퍼맨은 영웅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아쿠아맨은 방탕하다. 그 와중에 바나나맨이라니. 이름조차 허접한 우리의 주인공은 한때 히어로의 반열에 가까이 다가갔으나 현재는 영어강사다. 일개 공상에 그칠 수 있는 이 황당한 이야기는 작가의 화술을 만나 탁월한 환상곡을 조형한다. 미국을 위시한 강고한 지배 패러다임에 대한 우화라는 점도 비교적 선명하다.

 

이런 선명함이 박민규 소설의 인기에 한 몫하고 있는 것일까. 독자는 어렵지 않게 박민규의 판타지 속에서 현실을 연상할 수 있다. 냉혹하게 마운팅을 시전하고 포이즌 아이비들을 궤멸시키는 미국 지배 하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활자를 뚫고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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