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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속의 이야기



아랑은 왜

저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2-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참, 네 이야기를 쓰고 있어.” “저는 다 잊었어요.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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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로 시작하는 문장을 결정하기까지 소설가가 얼마나 많은 문장들을 쓰고 지웠는지 가늠할 수는 없다. 김영하는 글의 서두는 때로 모든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에 어울리는 소설가라 생각했다. 어둡고 음습한 소설, 그러나 섹시한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그의 책들은 첫 장을 펼치곤 이야기에 휘몰아들어 끝내 마지막까지 읽어야 했다. 그는 섹시한 글을 쓰기 위해 이야기의 호흡을 치밀하게 설계한다. 이 호흡을 따라 결국 모든 것으로 회귀하는 서두를 다시 펼쳤을 때, 이야기의 원주를 확인하는 기쁨은 크다.

 

 

등단 20년을 목전에 둔 작가 김영하는 한국에서 인세로 생활이 가능한 몇 되지 않는 인기 작가 중 하나다. 그는 활동적인 문인이다. 소설을 쓸 뿐만 아니라 번역도 하고 자신이 직접 책을 읽는(말 그대로 책을 소리 내 읽는다) 팟캐스트도 운영한다. 팟캐스트를 통해 목소리를 알고부터는 그의 소설 속 묵중한 냉소가 흐르는 활자들에 목소리가 입혀져 들렸다. 소설만큼이나 매력 있는 소설가였다. 자아가 투철한 이 소설가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도 높은 편이다. 언론에서 그를 인터뷰한 기사도 꽤 많다.

 

 

 

이야기를 말하는 이야기

 

 

아랑은 왜는 독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책이다. 김영하의 질박한 이야기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서두를 쓰는 법부터 플롯을 다루는 방법, 소재를 사용하면서 작가가 고민하는 지점, 결말을 어떻게 맺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 등 기실 소설 제목인 아랑은 왜에서 소설이 직접 타격하고 있는 부분은 아랑이라기보다는 에 있다. 이야기의 시원(始原)이자 이야기꾼의 근원인 라는 질문. 굳어있는 활자들에 이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를 이야기하는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김영하에게 유리한 장르다. 그리고 김영하는 이 유리함을 잘 활용한다. 경남 밀양에 전해 내려오는 아랑 전설을 각종 기록들을 참고해 끈질기게 추적하며 기존 서사의 우물에서 참신한 새 이야깃거리를 퍼오는 과정을 맛깔스럽게 요리한다. 전개되는 이야기의 후보들을 전시하며 독자들에게 직접 이런 저런 방향은 어떤지 묻는 장면은 재기로 넘친다.

 

 

소설가가 당면한 곤혹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여러 가능한 플롯 전개의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근거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나 주변인들을 작중 인물로 차용하는 일의 느낌들도 세세하게 전한다. 특히 일찍이 김영하 본인이 받았던 빈번한, 그리고 진득한 성애 묘사에 대한 비판을 해명하는 부분도 있어 흥미롭다.

 

 

 

그렇지만 정말 많이 자는 걸요. 그리고 그게 그들의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구요. 누가 누구와 자는가의 문제가 어쩌면 그들에겐 가장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단 말이죠. 물론 그것을 쓰는 작가에게도 그렇구요. 옛날에는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고 선배 한 명 때문에 자발적으로 전과자가 되어버렸다지만, 요즘은 누가 누구와 자는가의 문제에 필적할 만한 심각한 사건은 그들 인생에 하나도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 그렇다고 명색이 작가라는 사람이 청소년상담소의 상담원처럼 쓸 수는 없는 거지요. 먼저 깊이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된 이후에 피임과 가족계획에 대해 견해를 교환하고 나서 밝고 건전한 방식으로 섹스를 한다고 쓰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 아닌가요?

 

 

 

 

탁월한 이야기꾼이 진실을 대하는 법

 

 

 

추리 소설의 화법에 능한 김영하의 장점이 이 소설에서도 빛났다. ‘죽은 처녀 아랑의 원혼이 지혜로운 수령을 만나 살인자를 잡은 후 그 억울함을 푼다라는 아랑 전설의 서사는 단출하다. 그러나 소설가는 이 단출한 서사에서 무심히 넘어갈 수 있었던 몇 가지 굴곡들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독자의 흡입력을 제고할 방안을 이래저래 찾는 이야기꾼의 첫 수칙은 역시 합리적 의심이다. 전설을 다루는 여러 판본들을 비교하는 과정을 삽입하고 민담을 채록한 구술사 자료, 해당 시기의 실록까지 찾는 과정을 넣어 독자가 작자의 의심에 동조하게 하는 발판을 이중삼중으로 마련한다.

 

 

김영하는 소설이라는 작업이 결코 진실을 적확하게 지시하는 일이 아님을 단언한다. 박과 영주의 이야기에서 아랑 전설의 기시감을 이끌어내는 작업도 아랑 전설 원형이라는 동심원 속에서 진행된다. 어떤 이야기가 더 신빙성 있는지, 사람들에게 더 매혹적인지를 끊임없이 질문 던진다. 결국 소설 그리고 이야기는 하나의 원형으로부터 출발해 신빙성 투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들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조금씩 여러 사람들의 들을 묶어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이라고, 요컨대 이야기의 목적은 단 하나가 아니라고, 또 진실 역시 다양할 수 있다고 김영하는 본문 안의 무수한 물음표들로 답한다.

 

 

 

우리는 소설 속의 인물들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 사실은 현실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오늘 우리 집에 중국음식을 배달하고 간 젊은이의 과거를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결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기껏해야 단편적으로 알 뿐이라는 인식을 소설쓰기에 적용할 수도 있다. 이걸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사람들은 피곤해진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갑자기, 너희가 날 언제 봤다고 알은 척하는 거야? 너희는 버스에서 마주친 사람 이상으로는 나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거야, 라고 소리를 지르면 독자들은 처음에는 그 불친절한 인물에 대해 알려고 조금 노력하다가 이내 포기해버린다. 그렇게 되면 인물들은 마치 길 가는 사람들처럼 우리 앞을 지나가버린다. 별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김영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경구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모르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 시시각각 펼쳐지는 시원의 에너지는 이야기 속에 있는 이다. 이 틈은 곧 이야기의 숙명이다.

 

 

 

, 그것은 윤리

 

 

 

아랑은 왜는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론이자 쓰기의 윤리를 말하는 책이다. 진실을 결코 하나로 재단하려 하지 않을 것.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인 흐릿한 경계를 유지할 것. 틈을 봉쇄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 틈의 윤리를 말하는 김영하는 스스로 충실히 그 윤리에 따른다.

 

 

역사는 승자의 문학, 문학은 패자의 역사라 했다. 해당 시대 주류의 위치를 점하지 못한 패자의 서사들은 이야기들의 틈 속으로 스며든다. 진실의 지류는 늘 발 딛고 선 지표 아래 가장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다. 소설가는 이 틈 속에서 패자의 서사를 길어 올리는 이들이다. 그리고 패자들의 목소리에 신빙성을 덧대 새로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이들이다. 언젠가 지표 위에서 진실이 될 모든 라는 물음을 존중하는 이들. 그들이야말로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라고 김영하의 틈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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