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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좌우파이즘



소립자(페이퍼북)

저자
미셸 우엘벡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6-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미셸 우엘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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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한참 지난, 게다가 이야기할 거리가 넘쳐나는 책에 대해 리뷰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언젠가는 다시 읽어볼테지. 그래도 생각이 날 때 써두는 것이 좋다. '이건 써두어야 해'라고 생각하고서 쓰지 않은 것들은 죄다 휘발돼버리는 일을 종종 경험했다. 


다소 희미해지긴 했지만 <소립자>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직후의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압축적인 호흡과 철저한 고증으로 이어가는 우엘벡의 문체는 이 소설에 담은 작가의 '정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단하게 그의 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좌우간 그 정신이라는 것을 따지기 전에 우선 이렇게도 일정한 톤으로 묵직한 직구를 날리는 소설을 발견하는 것은 신선하다. 의미를 추출하기 위한 미로를 이리저리 설계해 놓는 것이 현대 작가들 대부분의 방식이니까. 겹겹의 엠보싱이 있는 티슈에 물이 스며들 듯 조금씩 결론을 향할 수 있게 점층적으로 구성된 다른 소설들과는 달리 <소립자>는 도움닫기-도약-도움닫기-도약의 도식을 보는 듯한 구성을 취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통찰, 특히 프랑스에서 발현되고 자란 '사랑에 대한 좌파이즘'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도약'이라면 미셸과 브뤼노의 교차하는 이야기들은 독자들이 이러한 도약을 체험하기 전에 필요한 톤, 내지는 충격을 선취하는 소위 도움닫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거다. 이토록 자명한 입장과 말초적 자극은 대중성을 갖고, 정치력을 배태한 이슈는 논쟁을 점화하기 마련이다. 1998년 우엘벡이 <소립자>를 출간한 당시 프랑스 문학계는 이 책을 두고 크게 들썩였다고 한다. <소립자>를 한글 번역한 이세욱의 해설에 따르면 "그해 미국 『뉴요커』지의 파리 특파원은 <우엘벡 사건>을 전하면서, <올 가을의 파리 사람들은 우엘벡을 지지하는 사람 아니면 반대하는 사람이다>라고 썼다."고 한다. 


과학은 '좌파의 사랑'을 무화시킨다


과격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소립자>가 시선을 던지는 곳은 바로 좌파, 혹은 진보론자들이 사랑을 다루는 방식이다. 진득한 성애 묘사와 통계와 직관을 이용한 사회학적 분석이 결국 가리키는 지점이, 바로 '사랑에 대한 좌파이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저자의 입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저자가 말하고 묘사하는 그들의 사랑 방식은 '개판'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성의 해방'과 성적 영역의 자유로움은 끝내 방종을 낳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삶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쾌락밖에 없다고 부르짖는 히피들의 죽음은 쓸쓸하고 비참하다. 브뤼노와 미셸의 어머니인 자닌의 이러한 삶은 그의 자식들에게도 평생동안 지속되는 외상을 남긴다. 성욕을 주체할 수 없어 비참한 남자와, 불감증에 걸려 주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자. 우엘벡은 '고매한 정조'에서 풀려난 삶이 진정한 행복과 사랑을 담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에 그는 짤막한 에필로그에서 아예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키는 극단적인 SF를 끌어오면서까지 단호하게 자답한다. "좌파의 사랑은 인간을 멸종시킬 것이다"라고. 


다소 극단적인 설정과 전개지만 이 같은 우엘벡의 전언이 뜨거운 논쟁을 야기했던 까닭은 20세기 말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과학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극단의 가능성을 포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전자 지도의 발견에서부터 완전한 해석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던 시간들, 이론적으로 인간 복제가 가능한 수준에 이른 생명공학 등 과학 지식의 축적은 '인류' 개념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소설 속에서 인류를 다른 종으로 대체시키는 것에 성공한 허브체작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의도는 인류의 특성을 그대로 지닌 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또한 생식 방법으로서의 성행위가 종말을 고한다고 해서 성적인 쾌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근에 크라우체 소체를 형성시키는 염기 서열이 밝혀졌다. 현재의 인류에게는 크라우체 소체들이 그저 음핵과 귀두의 표면에 퍼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래의 인류에게서는 이 소체들이 피부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성적 쾌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좌파, 너네 잘 알고 있는 거 맞아?


물론 우엘벡은 극단적으로 사고한다. 좌파와 우파라는 고정된 스탠스가 존재하지 않는 한 좌파로 자임하는 넓은 스펙트럼 위의 많은사람들은 우엘벡의 방식에서 강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소립자>가 문제작이 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단지 '극단적 좌파'의 경우를 환멸하는 것이 아니라 책 곳곳에 그간 실제 프랑스 사회에서 이뤄졌던 '성 해방' 패러다임 속 변혁들에 대한 냉소를 심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엘벡은 자유주의 성 담론을 탐탁찮게 여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유행에 뒤쳐진다는 생각은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도덕 운운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레토릭이 아니라 바로 진심이다. 그는 진심으로 성 해방 패러다임이 인간을 파괴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나의 개인적인 '좌파'에 대한 인상은 '지성'으로 표현되곤 했다. 사고하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흔히 힘과 일차원적 논리로 점철된 우파의 몇몇 목소리를 답습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던 까닭이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어도 드러나지 않았던 '합리적 보수'의 불확실한 개념 때문인지 좌우파의 구분은 '합리'와 '불합리'의 경계로도 파악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소립자>는 적어도 나에게는 '합리'의 진영을 차지하고 있었던 좌파도 타당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촉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존재를 목표로 하는가, 최종 병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몰아닥치고 있는 이 좌파 바람은 유행이 아니라 합당한 것이고 당위적인 것인가! 


그리고 남은 물음은 이것이다.

사랑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자유주의의 극단, 쾌락만을 추구하는 환경에서 사랑은 사라지는가? 그리고 인간이 아니고서도 사랑이 의미 있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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