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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칼럼

[동아]20140509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요약: 국가의 무능과 관료제/강원택 


관료제가 효율적이라는 그간 한국사회의 믿음은 박정희 시대 급속한 경제성장에 관료집단이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에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변모한 관료제는 더이상 이 효율성의 신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관료 조직이 효율적이려면 정치의 리더십과 통제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권의 끝을 없었던 박정희 시대와 달리 현재 5년 단임제인 한국에서 관료들은 정권의 이해관계와 배치될 때마다 레임덕을 기다려 살아남았다. 관료제에 대한 효과적인 정치적 통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그간 간과돼 왔던 관료의 정치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개인이 공직 사회의 개혁을 이끌고자 시도하는 것은 결국 관료에게 관료개혁을 맡기는 일이 될 여지가 크다. 전문 관료들을 통제하고 이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정무직들을 포함한 하나의 정치세력이 집권의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통제 하에 관료제를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 또는 제언이라기보다 박근혜 개인의 리더십 문제가 아닌가? 원래 청와대를 위시한 '정권'이 필자가 말한 '정치세력'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약 이 글이 '5년 단임 대통령제 국가'를 저격하고 있다면, 내각제 아닌 대통령제 하에서 이러한 완벽한 정권의 정치세력화가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해도 행정부의 비대화를 초래할 것인데 여기에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을까? 



(이하 전문)


오랫동안 방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빛바랜 가구가 이사하는 날 허연 햇볕 속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야 비로소 그 흉물스럽고 낡은 모습을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자화상을 처절하리만큼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무엇보다 실망스럽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국가관료기구의 무능함이었다. 거대한 참사 앞에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국가를 보면서 실망스러웠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번 참사 이전에도 원전비리, 군납비리, 간첩조작, 댓글사건, 황제노역 등 곳곳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관료 조직의 비합리적인 모습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관료의 효율성에 대해 미신에 가까운 믿음이 존재했다. 그들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중립적이며 불편부당하며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들로 여겨졌다. 실제로 박정희 시대의 급속한 경제성장 신화 뒤에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관료집단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관료제가 이미 많은 비판을 받고 있듯이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변모했다. 관료들은 퇴직하면 관련된 대기업이나 로펌에 사실상의 로비스트로 취업하거나, 관련 단체를 만들어 퇴직자를 배려하고 해당 부처와의 유착관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됐다. 대통령의 정치적 임용을 ‘낙하산’으로 비판하지만 결국 그러한 공기업의 주요 직책은 관료 출신들이 장악했으며, 파벌을 조장한다고 해서 대학총장 직선제를 폐지한 자리에는 교육부 퇴직 관료들이 총장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유능하고 빼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관료 집단이 이처럼 거대한 이익집단이라는 괴물로 변화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관료 조직이 효율적일 수 있는 것은 정치의 리더십과 통제가 가능했을 때다. 제도적으로 우리 대통령제는 5년 단임제다. 5년이라고 하지만 임기 마지막 해는 차기 대통령 선거로 보내게 되어 효과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간 여러 차례 보아온 대로 임기 중반 친인척이나 측근 스캔들로 지지도가 급락하면 곧바로 레임덕 대통령으로 추락해 갔다. 이는 권력의 끝을 알 수 없었던 박정희 시대와는 매우 달라진 환경이다.


예전의 경험을 보면 임기 3년차 이후에는 거대 프로젝트를 대통령이 새로이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지시하면 관료들이 열심히 받아 적고 그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만약 대통령의 지시가 해당 부서의 이해관계와 부딪히는 경우라면 그들은 버티게 될 것이다. 시간은 대통령보다 관료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5년 새 가고 또 오지만 관료제는 그 자리에 영원히 남아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관료제에 대한 효과적인 정치적 통제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전문성은 관료의 몫이며 이를 통제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 일부 내각제 국가에서 보듯이 여성이 국방부 장관직까지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전문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 때문이다. 중요한 순간에 정책적 판단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바로 정무적으로 임용된 이들의 역할이다. 관료적 합리성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상황도 바로 이런 때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과 뿌리 깊은 행정우월주의가 이와 같은 책임과 실행이라는 정치와 행정의 기능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공직 사회의 개혁’을 다짐했지만 사실 이는 말처럼 쉽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끌고 가려 해서도 안 되며, 지나치게 관료에 의존하려는 태도도 버려야 한다. 관료제의 문제는 관료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다. 이번 참사 후 정부의 첫 대응은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안전을 핑계로 또 하나의 관료기구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관료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면 개인이 아니라 집권당을 포함한 하나의 정치세력이 집권의 책임을 공동으로 담당해야 하며, 대통령과 정치적 책임 및 운명을 같이할 인물들이 직접 부서를 맡고 이끌어야 한다. 정치적 통제 없이 효과적인 관료제를 기대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