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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기레기 노이로제

어쩌다 혼자 간병인 노릇을 하고 있다. 병원 간이침대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다. 병실이 쾌적하고 좋은 편이라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밤에 푹 잠들기는 고역이다. 하긴 원래 밤에 잠을 잘 잔 적이 까마득하다.

내가 있는 5인실의 풍경이 이채롭다. 이 병원 교수이자 이사 출신이라는 할아버지의 부인이 함께 입원을 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이분이 어디가 아프다고 앓으실 때마다 각 병동에서 의사들이 재빨리 소집된다.젊은 의사건 나이 많은 의사건 하루에도 몇명씩 새로운 사람이 왔다갔다한다. 창가쪽 할머니는 이 방 사람들한테 "빽 최고인 분"으로 통한다. 교수님이셨던 할아버지는 매일 병원을 방문해 정신도 온전찮은 아내를 돌보시는데 짬이 날때마다 신문 칼럼면을 반에반절씩 접어 연필로 줄을 그으면서 읽는다.

바로 옆 병상엔 비운의 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온 젊은 여자분이 있다. 갑자기 골프공을 눈에 맞으셨다는데 수술을 앞두고 계속 우는 바람에 우리 옆 병상 할머니들이 계속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다. 이 여자분의 간병을 봐주는 아주머니는 신문을 잔뜩 쌓아두고 읽는 나를 보고 항상 틈날 때마다 신문 버리지 말고 달라고 하셨다.

짬짬이 할머니 곁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기레기 노이로제가 걸렸는지 그냥 피곤해선지 비슷하게 생긴 단어가 다 기레기처럼 보인다. 거래, 기러기, 기름기.

이제 빽 좋은 할머니는 퇴원을 하시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짐 챙기는 모습이 분주하다. 얼굴 모르던 여자 의사가 한명 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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