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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안철수'를 버려야 한다

선언은 달콤하다. 게다가 '새 것'이라니 더욱 달콤했다. 안철수라는 정치 신인이 '새정치'를 발음할 때 많은 이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지지부진한 정치판의 큰 변수가 된 안철수의 등장에 모두가 신경을 곧추 세웠다. 새정치는 곧 안철수 그 자신이었다.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때마침 일었던 멘토 열풍이 맞닿아 '안철수'라는 세력을 형성했다. 몇 번의 완벽한 '내려놓음'으로 그는 그간 한국 정치사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으로 분했다. 이윽고 안철수는 국회의원직을 달면서 완벽한 제도권 정치로의 편입에 박차를 가했다. '새 것'의 아이콘으로서 안철수는 권력 의지라는 일상화된 현실 정치 문법과 필연적으로 맞닥뜨렸다. 


'기초공천제 폐지'는 이렇게 제도권으로 스며든 안철수를 가늠할 사실상 첫 번째 기준이었다. 집권 여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공천제 폐지 이행을 촉구하며 본인은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약속을 지키는 정치라는 소박한 캐치 프레이즈는 여전히 안철수 현상 본위의 혁신성에 대한 기대를 소소히 만족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미약한 정치력의 돌파구로 민주당과의 신당 창당을 결정한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던 '새 것'으로서 안철수의 좌표는 홀연히 증발해버렸다. 그간 안철수를 있게 했던 반테제, 곧 구태의 본산은 양당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와의 화학적 결합을 지목하면서 안철수 역시 한국 정치의 뿌리깊은 이분법과 진영 논리 속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게 됐다. '구태'는 곧 '새누리당'으로 바뀌었고 '개혁의 대상' 역시 '새누리당'이 되었다. 


안철수는 "동지들과 지지자들이 실망했을 줄 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위태롭게 만들 선택임을 알았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던 동지들을 떠나보낼 각오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민주당과의 신당 창당이라는 '파격'을 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논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기초공천제 하나'가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강박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지난 '안철수 열풍'의 기억이 풍화되면서 이번 6.4. 지방선거를 분수령으로 세력화를 일궈야한다는 강박이 선택의 주효한 이유였을 것으로 보인다. 후보 구인난과 정치력이라 하기 미약할 정도의 세력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현실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안철수'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상황에 대한 자괴도 컸을 것이다. 그는 '열풍'의 상징이었기에, 민의로부터 추대된 정치인이었기에 미미한 존재감을 견디기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불리한 지형이었다. 안철수의 가장 큰 적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정치 혐오와 냉소였다. 구획을 정확히 따질 수 없는 정치 문화가 그의 적이었다. 안철수는 실타래처럼 꼬인 난제에 뜬금없이, 설명 없이 등장한 '정답'이었다. 저도 모르게 정답이 돼버린 그의 입장에서는 거꾸로 문제의 풀이 과정을 정리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좌우를 떠나 '자기 자신'이라는 확실한 지향이 있었던 점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대중은 안철수라는 기표에 열광했으므로 그는 '안철수의 생각'을 프로파간다로 삼을 수 있었다. 문제는 추진력이었다. 실제 현실을 변화시킬 원동력을 '안철수'라는 기표에 갇혀서는 도무지 얻어내기가 힘들었다. 물론 미완이라도 의미는 충분했다. 오히려 더 아름답게 기억될 터였다. 그러나 감동으로 흥행해 몰락과 미완으로 마무리되는 완벽한 비극 서사의 얼개로부터, 안철수는 이윽고 '치사하게' 탈주하는 쪽을 택했다. 


여전히 현실 정치는 안철수에게 버거워보인다. 아직도 그에게는 자신에게 씌워진 '국민적 열망'이라는 숙제를 부여받고 끙끙대며 어서 이것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모범생의 이미지가 겹친다. 그러나 이제 발 디딜 틈을 찾아 고민하던 정치적 결벽증을 용인할 자리는 없어졌다. 안철수 신당은 송호창 의원이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말했듯 소위 '더러운 중앙정치'안으로 이제야,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됐다. 더이상 권력 의지 싸움에서 주춤대다간 '백마를 탄 초인'은 커녕 잠시 역마를 들렀다 떠난 줏대없는 행려객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백마 탄 초인이 진짜로 중요해지는 것은 말에서 내려왔을 때다. 초인은 말에서 내려와 칼을, 지팡이를 또는 쟁기를 잡아야 한다. 안철수는 '안철수'를 버려야 한다. 현실이 도래했다. 숙제를 해야 해 끙끙댔던 소년은 이제 교활하고 영악하게 성장하지 않고선 잊혀질 것이다. 정치는 이런 것이다. 안철수 '열풍'은 완전히 사그라들겠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이제부터 평가될 것이다. 고고한 정치 신인 시절은 영영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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