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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장마철 뉴스를 보는 자세

장마철이면 얼추 각사 방송의 뉴스 전개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보지 않아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지만 매해 날씨 뉴스가 반복되는 이유는 비효율의 대가를 치르며 얻는 경각심 고조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통계치를 보면 여름 태풍의 이름이 위협적이지 않거나 예보가 전해에 비해 빈번하지 않은 경우, 실제 태풍의 규모와는 별개로 피해가 더 컸다고 한다. 아무리 예상 가능한 재난이라도 그것을 반복해서 각인하는 학습 유무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융통성’이 사회생활의 문법처럼 사용되곤 한다. 원칙에 외곬으로 얽매이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융통성은 효율성에 기초한다. 적은 수고를 들여 큰 만족을 이끌어내는 효율의 원칙에 융통성이라는 덕목은 더없이 잘 어울린다. 허례허식, 형식주의 등 전 근대적인 비효율의 문화를 개선했던 것도 이 융통성을 통해서였다.


이 대척점에 있는 것이 시쳇말로 ‘FM대로’라는 말이다. 'Field Manual', 곧 ‘야전규범’이라는 말에서 비롯한 이 말은 ‘정해진 규범을 잘 따른다’, ‘모범적이다’라는 뜻도 있지만 대개는 ‘원칙을 고수하는 경직된 인간형 또는 습관’을 이른다. 영악하게 상황에 따라 달리 처신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이 ‘FM’의 우직함은 때때로 바보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융통성 신화’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바로 'FM'이라는 것은 큰 아이러니다.


최근 감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당시 상시 대기 중이어야 하는 구급 함정이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단속에 동원되면서 구조용으로 쓰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해경 관계자들은 분명 200톤 규모의 함대가 가능성이 미미한 침몰 사고 대비용으로 ‘비효율적’ 대기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빈번했던 불법어선 단속에 쓰이는 것이 더 ‘융통성 있는’ 선택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4월 16일 이전 대개의 경우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결국 이 효율적 선택은 300명에 육박하는 목숨이라는 거대한 비효율적 결과를 초래했다.


누구도 바보로 살기 원하지 않는 시대에도 ‘바보 같은 원칙’은 필요하다. 물론 그 원칙이 초래하는 비용만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용도와 가치에 맞게 경직도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다만 한번 정해진 원칙은 1만분의 1의 가능성, 그 이상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에 대비하는 우직한 ‘FM대로’의 정신이 필요하다. 매년 뻔하게 반복되던 장마철 뉴스를 곱씹어 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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