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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자본의 얼굴

꽤 오랫동안 음침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던 B교회가 아직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모양이다.

올초였던가. 교회 울타리에 철조망이 쳐진 것을 보았다. 정문엔 컨테이너가 설치돼 그 속에서 용역 직원으로 보이는 몇몇이 삼엄하게 보초를 서기도 했다. 아무리 요즘와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전유됐다고는 하나 그래도 '교회'라는 건물이 최소한으로 가지는 이미지라는 게 있다. 이 교회는 아무래도 좀 심했다. 모텔촌 한 가운데 있는 교회라는 것도 이질적인 풍경이었지만 철조망이라니, 용역이라니? 생각보다 '막 가는' 그 교회의 풍경이 어두운 한 장면으로 내 등굣길을 어딘가 늘 찜찜하게 하곤 했다.  

몇 번의 큰 충돌과 힘 겨루기 끝에 철조망도 내려가고 컨테이너 박스도 치워졌다. 잠잠하다 싶었는데 오늘 아침 또 한바탕 난리가 있었다. 닫힌 철문을 사이로 누가봐도 용역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교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대치 중이었다. 경찰차 몇 대가 대기하고 있는 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훑어보다 편의점에 들어가 무슨 일인거냐고 알바에게 설핏 물었다. 장로랑 목사가 파벌 싸움하는 모양인데요, 라며 피곤한 표정의 알바가 대답했다. 

버스 시간이 급해 자세히 둘러볼 여유 없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이윽고 대로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한 무리의 용역 일대를 맞닥뜨렸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 바지 차림의 건장한 사내들이 어림잡아 20명은 되는 듯했다. 무리에는 여자 용역들도 있었다. 삼삼오오 짝다리를 짚고 웃으며 담배를 피웠다. 한 편의 삼류 느와르가 느닷없이 우리 동네, 내 눈 앞에 펼쳐진 형국이었다. 후텁지근한 여름 공기가 그들의 담배 연기를 싣고 그 우악스러운 분위기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대낮의, 대로변의 느와르라. 

그들은 언제나 흔적을 남겼다. 항상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 나지만 셔틀을 타러 가는 길에 지나는 골목 풍경이 묘하게 일그러졌다는 인상을 받을 때나, 유독 매운 공기가 맴돌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용역이 동원된 다음날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비슷했다. 각종 철거나 집회 현장에 등장하는 그들의 얼굴은 그들 각각이 다른 사람임에도 어딘가 닮아있었고 비슷한 위협감을 줬다. 그들에게는 '사설경비업체'라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용역'으로 불린다. '사용되는 인력'.

실상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에 발 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용역'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누구보다 그들에게 잘 어울렸다. 머뭇거릴 것도, 따질 것도 없이 명쾌하고 직접적인 지칭이었다. 그들은 그저 '용역'이라는 이름에 적합했다. 자본은 직접 나서서 처리하기 걸끄러운 일들을 손쉽게 그들을 쇼핑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었다. 쉽게 고용된 그들은 어떤 대리 행위를 수행하며 그들만의 골격을 갖춰갔다. 비슷한 외양, 비슷한 표정과 비슷한 위협감 그리고 비슷한 웃음.

자본과 동정심, 자본과 자비, 어쩌면 때때로 자본과 양심을 교환하게 된 인가된 사조직으로서의 '그들'은 뭘 바라 살고, 희망하고, 꿈꾸는 걸까? 오늘 아침 내게 엄습했던 의아스러움과 당혹감이 단지 그들의 민낯을 내가 직접 확인했기 때문인 것인지, 심지어 예배당에서도 계파간 불화에 목사가 용역을 동원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둘 모두인지는 명확히 판단내릴 수 없지만 한편으로 내가 느꼈던 공허함과 씁쓸함은 아무래도 '그들'로 묶여버린 그와 그녀들 각각이 언제부터인가 저당잡힌 폭력으로, 다시 말해 거래되는 폭력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짝다리를 짚은 채 웃고 있었던 그들의 표정이야말로 현대 자본사회 내 인간소외의 민낯이 아니었을까? 인간성을 상실당한 그들 각각과, 그렇게 자본과 교환된 힘으로 제압을 당하는 사람들 모두를 담고 있는 어떤 복잡한, 얼굴. 

저녁까지 아침나절 봤던 그들의 흘러내리는 웃음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엔 경찰 닭장차 세 대가 나란히 우리 골목을 감싸고 있는 걸 봤다. 대치는 거듭되고 있었다. 동네 유감이자 시대 유감이었다. 

+ 아직도 거듭되고 있는 내 불면증도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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