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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10월의 기록

아날로그 다이어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연초엔 품을 들여 샅샅이 서점을 뒤져 산 노란색 수첩도 있다. 그런데 올 하반기에는 계속 휴대폰 달력을 썼다. 쓸데없는 고집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확인하니 훨씬 편하다. 


10월은 길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시 달력을 들여다본다. 하나라도 일정이 기입되지 않은 날이 5일을 넘지 않았다. 어느 날에는 일정 7개가 적혀있는 날도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팝콘 터지듯 쏟아진 공채들의 틈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거의 매주 있는 시험을 치느라 고생들을 많이 했다. 결국 나는 한 줌의 성과를 그러쥐었지만, 아쉽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내상은 아마도 클 것이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가 시작인 시험들 역시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장기전이 되면 정말 체력이 중요해진다. 


배부른 소리가 맞지만, 역시 그랬다. 그 소중하다는 3일을 어정쩡한 기분으로 보냈다. 합격의 첫 맛은 부담감이다. 환희는 잠시, 이 행운을 그러쥐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가득 메운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부담이다. 여기저기서 자기 일인 것처럼 축하를 건네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인사를 들을 때에야 새삼 현실을 깨닫곤 했다. 이제 며칠 후면 이런 이상한 기분도 끝이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삶의 궤적에서 고군분투하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투지를 불태우며 살게될 것이다. 


오늘은 친한 선배와의 약속 시간 전에 막간을 틈타 서점을 들러 적당히 큰 수첩을 샀다. 매일 내가 마주하게 될,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진할 것임이 분명한 경험들을 모조리 적어놓을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기록을 지탱하며 앞으로의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름을 쓰는 펜촉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 


이미 본 사람도 많고, 앞으로 보게 될 사람도 많다. 앞으로 펼쳐질 나날들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남은 며칠동안 그간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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