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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얼굴들

10월을 마무리하자 11월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조금씩 실감이 났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 출입문에 있는 경비 근로자들께 인사드리고, 밤낮없이 환한 회사로 들어간다. 아직 본격적으로 투어는 하지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가늠이 된다. 엘레베이터가 서는 층마다의 공기가 다르다. 내 베이스캠프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보도국이 유독 더 침착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렇다. 무언가를 재빨리 생각하는 얼굴들. 그렇게 넓어 보이던 회사가 고작 몇 주 근무했다고 벌써 손에 잡힐 것 같다. 보도제작국을 가로질러, 편집실을 지나면 센터가 나온다. 중요한 길목마다 교대 근무를 서는 경비분들과는 이제 안면이 트일 정도로 눈인사를 했다. 


지난주에는 일주일간 사내 교육을 함께 했던 동기들과 관악산 정상에 올랐다. 아찔한 골짜기들을 발 밑에 두고 케이블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2년에 한번꼴로 '산행'이라는 명목으로 산을 방문하긴 했어도 '연주대'라는 걸 그렇게 가까이 본 것은 6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담한 일터에서 소담하게 모여 일하는 선배들을 보았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매일같이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고 일터로 나가실지 궁금했다. 


탄현 드라마세트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꼭 소풍을 온 느낌이었다. 이제는 퍽 친해진 동기들의 일면들이 흥미롭다. 비율도 비슷한 각 직군마다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특색들을 비교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물론 가장 알아보기 쉬운 직군은 아나운서였지만 교육을 진행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면밀하게 캐릭터들을 파악해가면서 조금씩 개성들이 드러났다. 줄곧 '고난의 아이콘'은 우리였지만 탄현 이후 드라마로 바뀌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다 들릴 것 같았던 촬영 현장이 인상적이었다. 전체 교육이 끝나고 각 부서 교육기간, 밤을 새고 잠깐이나마 자러 가는 길이라던 드라마 동기들의 얼굴에 피곤이 묻어있었다. 물론 내일부터 몇 개월간(아니 평생?) 펼쳐진 우리 모습의 예고편이었겠지만.


시나리오 집필에 관심이 있어서 유독 드라마 동기들에게 눈길이 갔다. 모든 직군의 동기들 저마다 이력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화려했지만 드라마 동기들은 조금 더 침착하고 깊은 느낌. 부쩍 친해진 한 오빠는 등단한 시인이었다.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나에게 자기가 아낀다는 시집을 불쑥 내밀어 선물해주었다. 꼭꼭 읽어보겠다고 재차 말했지만 어쩐지 올해가 다 가기 전에는 오늘밖에 시간이 없을 것 같다. 


발랄한 예능, 진지한 공대생같던 기술, 서글서글한 라디오, 새침하고 훤칠한 아나운서들, 모범생같던 경영팀까지 든든한 동기들을 얻은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길게 지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정형화되지 못한 팀이 교양인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더 잘 알게 되겠지. 하나같이 훌륭한 사람들 일색이라 보냈던 시간이 정말 뿌듯했다. 또 유머 감각들은 다들 어찌나 출중하시던지..


바닥이 좁다. 여기저기서 내 얘기를 들었다는 연락들이 많이 온다. 대내외에서 기대하는 바가 큰 모양이었다. 꼭 어떤 걸 달성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에게 맡겨진 것들을 소홀함 없이 모두 해내는 데 열중해야겠다. 아직까지 나에게 퍽 어려운 '초심'이라는 것도 조금씩 조형해가야할 터. '중심'을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더 단단히 여며야겠다. 전형 중에 계속 반복해 들었던 <숱한 밤들>이 어느정도의 역할을 해줄 것 같다. 초심을 잊을 만할 때 다시 들을 노래를 만들어 둔 것은 잘한 것 같다. 


내일부터다. 몸이 잘 받쳐줬으면 좋겠다. 



당분간 누리지 못할 일요일 오후의 브런치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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