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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어느덧 6월

시간이 빨리 흘러 어느덧 6월이 되었다. 그동안 수습을 뗐고, 수많은 술자리를 거쳤고, 입봉을 했다. 블로그에는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늘 조금씩 일기를 찌그리다 지우기 일쑤였다. 생각이 너무 많은 까닭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까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활은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임감의 강도와 무게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세고, 무거워졌다는 점이다. 달라진 위상에 견주어 별로 달라지지 않은 능력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한테 푸념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발언으로 그렇게 많이 쪼였던 나지만 웃긴 건 6개월 간 그럴듯한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쓰기를 자꾸 미루다보면 언젠가 꼭 써야할 때 쓰지 못하게 된다던 그 어느 평론가의 말이 가시처럼 와 박혔다. 글의 변비를 앓기 시작했다는 것, 감퇴하는 기억력과 더불어 근래 들어 가장 크게 느낀 내 문제다. 


이전보다 선배들에게 前史에 대해 더 가까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압박감도 커졌다. 적어도 선배들 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퍽 부담이다. 도무지 실질적인 여유라는 것을 찾기가 어려운 나날들이다. 늘어지게 잠을 자더라도 마음 어딘가가 항상 불안하다. 지난 6개월이 나에게 준 '새 눈'을 불현듯 느낄 때가 있다. 평화로운 거리에 있더라도 경찰 무전 소리나 앰뷸런스 소리만 들리면 귀가 쫑긋해진다. 이 번듯하고 깨끗한 거리 어디에서도 누군가 누군가를 등쳐먹고 칼로 등이나 배를 쑤신다거나, 하다 못해 사소한 시비로 주먹다짐을 벌이는 일이 있을 거라 으레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냉소와, 충분할 정도의 담대함과, 조금 모자란다 싶을 정도의 감수성을 가지고 현장을 바라본다. 내가 서 있는 어느 곳이든 모두 '사건 현장'이 될 수 있음을 느끼면서. 기자라면 누구나 마음 안에 품고 있는 몇 그램의 욕심까지 버무려서. 이전 같으면 생각없이 스쳐 지나갔을 풍경들이 눈 안에 맵게 들어온다. 직접 보지를 못해도 내 스스로가 내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실망감과 기대, 냉소와 욕심, 무관심과 관심이 적절하게 배합된 특유의 그 눈빛과 태도. 현장에서 그런 '눈빛'을 가진 동료를 마주쳤을 때의 감정이 꽤 묘하다. 이런 게 바로 오피니언들에서 그렇게 말해대는 "동료의식"이란 건가. 


어제는 거의 몇 개월 만에 소설을 읽었다. 쉬는 날에 집에서 미처 다 읽지 못하고 굴러다니는 소설책 한 권을 집어 들어 읽었을 뿐인데 책장이 넘어갈 수록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죄책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숨의 <뿌리 이야기>와 그가 스스로 꼽은 그의 단편 <왼손잡이 여인>이었다. 학생 때 만났던 김숨이 어쩔 도리 없이 이번 소설들에도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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