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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영화 두 편과 일상

오늘은 친한 동료 둘을 만나고, 좋은 향수를 사고 영화 한 편을 새로 봤다. 

샌안드레아스라는 재난 영화였는데 크게 훌륭하지도, 크게 보기 민망할 정도도 아니었다. 

흔하디 흔한 재난 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영화. 감정선은 둔탁하고, 갈등은 너무 예상 가능했다. 

크게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집으로 나서는 길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엄마가 보낸 할아버지 78번째 생일 파티 사진을 봤다. 흰 머리에 전보다 훨씬 야윈 몸을 보니 더 쓸쓸했다.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태워다 주는 택시 운전기사의 뒷모습이 슬프고

육교 앞 항상 불이 켜진 24시간 편의점을 보는 것이 슬프고, 그 안에 있는 핏기 없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슬프고 

쇼핑백을 거머 쥔 내 손가락이 슬프고, 큰 간판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슬프고, 내일 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는 있을지 생각했다. 


저번주 주말에는 책을 과소비했다. 임경선 에세이, 강준만의 새 책, 언젠가 빨간책방카페 서재에 꽂혀 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제목을 달고나온 책에다(얼마나 많은 내용을 얼마나 잘 간추렸는지 궁금해서 사봤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가장 많은 일들이 바로 그런 것이니까. 줄이고, 줄이고, 줄이는 일) 언젠가 소개를 받고 꼭 한번 읽고 싶었던 <작가는 무엇인가>, 김영하의 산문 <보다>에 더해 제 버릇 못 고친다고 주간지 몇 권까지 샀다. 요즘 오프라인에서 그렇게 책을 사대는 사람이 없는 건지 서점 직원은 "할부로 해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서점에서 그런 질문은 처음 들었던 것 같은데.. 쩝.


역시 그렇게 사재기한 책들은 책장에(아니 책상 위에 아무데나) 고이 모셔두고 있다. 

침대에서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에세이를 일단 제일 먼저 펴들었지만 서른 장 읽기도 전에 고꾸라져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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