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구독 요청을 받은 날

새로운 삶을 막 시작하는 친구의 첫 걸음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누구 말마따나 한국인들이라 약속을 퍽 잘 지켜서인지, 유독 사랑스러운 이 친구의 시작을 응원하는 이들의 진심이 모아져서인지 밤 9시가 넘어서자 기약했던 이들이 거진 전부 다 모였다.

 

얼굴들이 닮았다. 신기한 점이었다. 친구의 어떤 일부를 조금씩 다 닮아있는 이들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다소 나른해보이는 분위기도, 집시 같은 자유분방함도,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열려 있는 넉넉한 틈도. 어딘가 익숙한 면모들이 있어선지 분명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이들인데도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는 미러볼이 돌아가는 방에서 "어떤 글을 쓰더라도 난 네 글을 꼭 구독할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이젠 제발 글 좀 쓰라는 이야기였는데, 이 친구가 그간 내가 썼던 어떤 글을 봐왔던 건지 순간 뜨끔했다. 그래, 그래도 그건 진심이었다. 누구든 진심이 담긴 말을 들으면 귀가 번쩍 뜨인다. 내 존재를 대변하는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사실 무진장) 기쁜 일이다.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잤다. 

 

글감을 고민하는 일은 괴롭고 즐거운 일. 다소 비관적이고, 슬픔과 몰락에 이끌리고, 그러면서도 대책없는 해피엔딩으로 결론 맺어지는 선언적 문법을 휘감고 있던 시절보다 엄청나게 나아진 것은 없겠지만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내 말투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던 것 같다. 

 

달라진 것. 단순하고 정직한 자극에 부여하는 가치가 더 커졌다. 주로 쓰는 문장의 길이가 부쩍 짧아졌다는 것도 영향을 줬겠다. 짧고 분명한 것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졌다. 불투명한 이면에 뭔가가 있을 거란 기대보다 표면에 드러난 투명한 것들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다. 

 

삶이라는 것엔, 정장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서는 말할 수 없는 참으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멋지지도 않고 새끈하지도 귀감이 되지도, 인사이트가 되지도 않는 지질한 일들이지만 반드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리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이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 그런 일들.

 

그나마 정기적으로 긴 글을 쓰던, 그 글에서 만족을 찾고 보람을 느끼던, 그러면서 더 자주 쓰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가책에 시달렸던 나와 지금의 나는 겉보기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이 지질한 삶의 일부들을 뚫고 지나오는 동안 매분 매초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누군가로 조형되었을 것이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해선 반드시 마음이 쓰이는 독자가 있어야 한다. 나는 늘 어떤 것이라도 쓸 때면 그건 누군가에게 띄우는 편지라고 생각해왔다. 단순히 한 명, 수 명에게 타겟팅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는 이 글을 쓸 때 쏟은 마음의 최소한 절반 이상은 감응해 줄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 글을 쓰게 된다. 마이웨이, 자기만족으로서 글쓰기 성향이 높은 편인데도 그렇다. 

 

또 하나. 문단 하나 하나를 밀어내는 힘은 '밀도 높은 감정'이다. 분노가 많은 시절에 유독 기사가 잘 씌어지듯. 말할 거리가 많다는 말은 마음에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인사이트가 들어올 자리가 없으니까. 밀어내야 하는 것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감정 없는 '기능적 인간'으로 복무할 땐 정말 쓸 거리가 없다. 

 

하여 글이 잘 써진다는 건 '행복'과는 큰 관련이 없다. 누구든 아주 조금씩은, 스스로를 소외시켜야 '시간이 잘 간다'는 느낌을 받지 않나? 생각이 너무 많아져 시간이 안 가는 건 행복과도 조금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굳이 머리 아픈 스트레스를 만들어 쓰기의 고통을 토로하는 내 많은 주변인들은 뭐랄까 말하자면 '여과기의 윤리'를 수행하는 느낌을 준다. 나라는 깔때기를 거쳐 나올 무언가에 대한 윤리! 의리! 그렇게 정제된 무언가는 결코 그냥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누군가에겐 반드시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긍정! 

 

이 윤리적 감정이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 같진 않다. 어떻게 알아볼 수 있냐면, '쓰고 싶을 때 쓰지 않으면 써야 할 때 쓰지 못한다'는 문장에 대한 반응을 살피면 된다. 누군가는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를 연발할 것이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모어걸스 한 해의 스케치(2016)  (3) 2019.01.02
예전의 글들이 주는 교훈  (0) 2018.07.31
남들이 보고 싶어하는 글  (0) 2017.04.07
매순간이 기회비용  (0) 2017.01.24
편지가 와르르르  (0) 201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