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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첫인상이 중요해요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대단한 계획이나 전략을 가지고 뭘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순간순간 쏜살같이 날아가버리는 시간이 층층이 쌓여 어느새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형성하고 만다. 비교적 균질적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그 나름의 생활 조건의 범위 안에서 불현듯 어떤 특정한 것에 이끌리고, 그것으로부터 마침내 소위 '다원주의' 사회를 이루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개성들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퍽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개성의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곧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는 듯 생각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자소서를 몇 차례 쓰는데도 아직도 자소서가 제일 어렵다. 차라리 친구 자소서를 대신 쓰라면 쉽겠다. 자신에 대한 기만일까, 타인에 대한 지나치게 성급하고 단촐한 판단일까. 


다른 사람의 글을 첨삭할 때도 마찬가지. 고작 글 두 편 정도만 읽어도 어쩐지 완고하게 잘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다. 이 '어떤 것'에 대한 최초의 판단으로부터 다음 글들도 가늠되고, 평가되고, 첨삭되고.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괜한 말이 아니다. 별 생각 저 생각 다 하고 살면서도 유독 자기 기준에 대해 고집스러운 사람들에겐 특히 더. 


나에게 지렁이처럼 낮게, 포복의 글쓰기를 하라고 조언해주셨던 그 분의 이야기가 맴돈다. 그러나 내려놓는 것만 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깊이와 내공이 부족한 사람은 내려놓을수록 일천한 자신의 스타일을 각인시키기 마련일테니까. 그렇다면 그 내공과 깊이란 건 어떤 식으로 쌓이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인가? 어쩌면, 철저히 관성에 지배되고 있는 한 인간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상처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천 번은 흔들려야 마흔이 된다는 말도 어쩌면,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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