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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박문각 시사상식과 박민규 사이

좋은 카페의 좋은 자리를 찾았다. 3분마다 떡볶이를 휘젓는 아줌마와 그 옆에서 성경 공부를 권하는 양복입은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좋은 시절이다. 이제 구형으로 전락한 내 핑크색 넷북과 거대한 사이즈의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으면 그럭저럭 시간은 잘 간다. 조앤 롤링처럼 해리포터 시리즈라도 써내야할 것 같다. 쓸모 있는 것을 쓰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새내기들의 바퀴벌레같은 구동력을 핑계삼아 수업 전 읽을 책들을 구하는 서점 순례를 매주 떠나고 있다. 중도는 일찌감치 털렸다. 전자책까지 죄다 쓸어갔다. 학기초의 이 열정은 아마 꽃망울이 터지는 4월 초쯤이면 다소 수그러들 것이다. 낯익은 책 제목들을 볼 때마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들어 표지 사진을 찍어대는 습관도 익숙해졌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싫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교보문고는 지겨워서 다른 곳을 간다. 저번주엔 사당. 이번주엔 강남. 날씨가 좋은데도 서점에 사람들이 많다. 서가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씩 불쑥 말을 걸고 싶기도 하다. 선생님은 무슨 책을 읽으러 오셨나요? 들고 계신 정글만리는 재미있나요? 여긴 향수를 안뿌리니 더 좋은 것 같지 않나요? 


팔짱을 끼고 오는 젊은 커플들도 많다. 이런 대형 서점이면 여자화장실은 늘 맹렬하게 화장하는 여자아이들로 가득하다. 거울을 보고 콤팩트를 꼼꼼하게 찍고 생기있어 보이는 글로스를 가볍게 여러번 덧바른다. 내가 알기론, 광화문 교보문고 여자화장실의 맹렬함은 강남역 여자화장실 못지 않다. 서점은 다만 연인과 같은 취향에 대한 인장의 공간으로 적합했던 것 같다. 서점에서 별로 할말이 없었던 전 남자친구와의 서점 데이트는, 생각해보면 별로였다. 과제였던 박민규 장편 소설 한 권을 바닥에 앉아 단숨에 읽었다. 재밌었지만 섹시한 김영하가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토요일엔 아는 분이 결혼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까만 양복 입은 신랑. 평생을 서로에게 헌신하기로 사람들 앞에서 약속했다. 제도 속으로 뚜벅뚜벅 들어가는 두 분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마도 행복하실 것이다. 


짙은 새 앨범이 나왔다. 

보브 컷이라는 단발머리를 했다. 

향기가 오래가는 바디로션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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