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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엄마한테 잘하자

나쁜 년들은 힘들 때만 연락한다. 

나도 나쁜 년이라 평소엔 도서관이다, 스터디다, 앞에 사람있다, 밥 먹는다, 지각이다 등 각종 이유로 전화도 황급히 끊거나 잘 안 받으면서 우울하거나 짜증날 때만 엄마를 먼저 찾는다. 그러다보니 엄마가 읽고 듣는 내 얘기엔 짜증난,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다. 

요즘은 가끔 여자로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원래부터 여자였는데. 나는 나쁜 년이라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인간 몫의 숨을 쉬었고 밥을 먹었을 엄마의 육체를 생각했다. 엄마의 코와 손가락과 머리카락과 발가락을 생각했다. '부모'라는 어떤 부채를 나는 엄마에게 두 세배로 받아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동안 팟캐스트를 들으며 울컥 목울대가 막혔다. 발 얘기였다. 발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 했다. 눈을 감고 바람이 많이 부는 꼭대기층 외나무다리 한 켠에서 건너편에 누가 인질로 잡혀 있어야 내 발이 스스럼없이 움직일 것 같냐고 물어봤다. 그 수업에서 울었던 학생은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너무 슬펐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나는 트레드밀 위에서 눈을 뜨고 생각했다. 바람이 쉬잉 부는 100층 꼭대기 난간의 외나무다리. 한 쪽엔 나, 한 쪽엔... 엄마? 

내 빠른 연상 속에서 내 발이 움직이기도 전에 엄마가 나에게 뛰어왔다. 헐레벌떡. 걸음도 종종종 걷는 우리엄마 외나무다리 따위 제대로 못 건널 건 뻔하다. 울컥 목울대가 막혔다. 어떤 오랜만의 울컥함이었다. 새벽 6시 트레드밀에서 그야말로 우스운 꼴이 될 것이어서 올라온 울컥함을 꿀꺽 삼켜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훈련을 받고, 예의를 학습하고, 좋은 사람들의 책을 읽고, 그렇게 마음을 키우고 생각을 키워서 열심히 글을 쓰고 말을 해서 

가장 오래 함께 지낸 이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주지 못하다면 제기랄 그게 무슨, 



헛질인가? 


엄마한테 잘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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