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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팽팽한 이때, 어제는 오랜만의 휴일을 즐기겠다고 오전 나절부터 집을 나섰다. 사람이 이렇다. 기자라도 별 수 없다. 오전부터 정치부 선배들이 이것저것 챙겨 올리는 취재정보를 보고 있으면 이 갈등도 금세 다 봉합될 것 같다. 눈빛을 나눴던 삼곶리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아직도 그곳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고 해서 바로 교전이 일어나는 뻔한 결과는 없을 거라 믿어본다. 


어제 나눴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준비하던 시절 만큼 내가 기사와 취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뼈아픈 각성을 했다. 노력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S는 말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 S의 화법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의 사람은 정작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하면서도 자신의 '옳음'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스스로를 세일즈하는, 소위 말해 '착한 척'하는 위선자들인데, 그래서 차라리 솔직하게 스스로의 도덕적 한계와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위악적인 인사들이 나는 훨씬 더 정이 가고 좋았다. S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깊은 대화'를 나눠 뜻깊다곤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취재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유독 S에게만 그런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자잘한 영웅담을 들으며 그간 내가 얼마나 충분히 노력하고 있지 않았었는가를 느낀 건 큰 수확이다. 잘할 수 있다는, 처음의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다짐한 기억이 엄습했다. 부족하다는 것만 늘 느끼고 있으면서 노력하기 힘든 환경적 요소만 곱씹고 있으니 도움이 될 턱이 없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겸손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되새겼다.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감동적인 것이 없다. 노력의 절대량이 있으면 당당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요구하고 견해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 문제에 대해 적어도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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