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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졸업식에 다녀왔다


 졸업식에 다녀왔다. 왁자지껄, 한바탕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서 지난 2월이 불쑥 떠올랐다. 딱 여섯 달 전 내가 저들처럼 졸업 가운을 두르고 꽃다발을 손에 안은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렇지만 갑갑한 마음으로 점심밥이 도저히 목 뒤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거다. 손에 꽃다발을 쥐고 사진을 찍다가도 두 시간에 한번씩 소방서에 전화를 돌리고 선배에게 보고하는 나를 친구들이 신기하게 쳐다봤었다. 추웠다. 


 오늘은 K의 졸업식이었다. 어젯밤 41층 꼭대기에서 황홀한 야경을 바라볼 동안 이미 오늘의 꽃순이는 나로 정해졌다. 아침 일찍 신촌으로 가 예쁜 꽃을 질렀다. 돈을 벌어서 좋은 건 이런 것이다. 예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다른 약속이 파토가 나게 되면 떨이로 파는 예쁜 꽃들이라도 쓸어가야겠다.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에겐 어떤 환상이 남아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사려깊은 애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직장을 가지고 화려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도, 그럴 듯하게 집을 꾸며놓고 친구들을 초대해 홈파티를 벌인다거나 뭐 이런 자잘한 '이미지'들이 어느새 하나씩 하나씩 성취되고 충족되면서 정작 더 이상 바라는 '행복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의를 뜨겁게, 또 차갑게 나눌 수 있는 선배들이 있는 내 조직도 좋고. 가끔 일이 많고 고되지만 피곤한 마음을 서로 다독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좋다. 이제 더 커진 행복의 몫은 앎과 실력, 보람으로 채워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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