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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것 저것 요즘 사는 이야기

오랜만에 이틀 모두 쉴 수 있는 주말이 오면 금요일 밤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급속도로 추워진 날씨 탓에 마침 적당히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을 하던 차였는데. 어제는 오늘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쇼핑몰을 걸어다니고 카페에서 소설을 한 권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온수매트를 샀다. 새 이불 시트를 꺼내 깔고, 온수매트를 설치하고, 이불을 덮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내 방을 보는 것은 지금 현재 내 삶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행복의 요소다. 마트에서 사온 적당한 와인을 따고, 모 선배가 선물해 준 서경식 교수의 에세이를 몇 장 읽다 따뜻하게 잠들었다. 오늘은 서늘한 감촉의 공기가 뺨에 닿은 뒤 파란 하늘을 보며 눈을 떴고 저녁 약속을 나가기 전에 이불 빨래와 옷장 정리를 할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적어도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날씨가 추워지니 옛 기억이 마구 몰려든다. 겨울은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그 냄새를 맡아버리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간 내가 겪었던 겨울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파고들고 만다. 횡단보도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선우정아의 재즈 피아노 앨범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귀에 꽂다가 그 술집을 봤다. 쓰고 싶지 않은 기사를 썼던 날, 새벽까지 펑펑 울면서 선배들과 정종을 따라내고 비웠던 신도림역의 그 술집 역시 그맘때면 저절로 튀어나와버리는 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내게 몰려드는 겨울 기억은 단연 작년, 그러니까 정확히 1년 전의 기억이 아주 크다. 뭘 입어도 그렇게 추울 수 없었던 강남 도곡동의, 중랑구의, 마포의, 은평의, 구로의 그 나날들. 수습이 한창이었던 이삿날, 침대를 보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끝내 괜찮은 걸 찾지 못한채 강남 압구정역에서 엄마를 배웅하고 뒤돌아 그렇게 후두둑 떨어졌던 눈물. 미처 다 정돈되지 않은 짐들 사이에서 보일러를 올려도 좀체 따스해지지 않던 얼음장 같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8시간 후에 또 꼭두새벽부터 택시를 탈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었던 기억. 그러다 선배한테 전화가 와서 화들짝 놀라 바로 파카를 주워입고 홍대에서 편의점을 찾던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했었던 그 날. 그 날도 참 추웠다. 


한겨울에야 입을 수 있는 두툼한 남자 모직 코트를 보면 끌어당기고 만지고 싶다. 겨울 옷은 어딘가 설렌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딱딱한 수트든, 파카든, 집업이든 그 특유의 똑 떨어지는 겨울 옷의 느낌이 좋다. 백화점에서 눈요기를 톡톡히 했다. 


집에는 사재기한 책들이 마구 쌓여있다. 더 들어갈 곳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여유 공간이 많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매주 그렇게 책을 사댔는데도 아직 방이 넉넉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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