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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요즘 단상

1. 글을 쓸 때는 타박할 것 투성이다. 손이 시려워서, 발이 시려워서 글을 쓰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의자가 지나치게 작아서, 또는 높아서 또는 헹거에 옷이 너무 많이 걸려 있는 바람에 주의가 사나워서, bgm으로 틀어놓은 킹스오브컨비니언스의 곡들이 너무 졸려서 등. 그냥 갖다댈래도 상상력이 부족해 대지 못할 온갖 핑계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수많은 '리포트'라는 걸 제출하며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던 학사의 견지에서 이러한 갖가지 잡다한 타박과 핑계들은 '좋은 시작'일 수 있다. 글을 쓰려는 찰나, 마침내야 생각이 시작됐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자정을 넘기지 않고도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하다. 남는 시간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여유를 찾기가 어려운 생활이다. 취재는 늘 경각에 달려 있다. 지금도 당장 내일 내가 돌파해내야 하는 과제들을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터프한 취재에 강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잘못 박혔다. 망한 거다. 늘 내상에 시달리는 내게 '터프'는 어울리지 않은 말이다. 


2.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다. 불행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안락한 삶이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 것 같다. 그 '안락'을 어떻게 보느냐도 사람에 따라 다를거다. 얼마 전 소개팅했던 어떤 사람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대뜸 "얼마나 받냐"고 물어봤다. 궁금해서라지만 확실한 건 처음 본 사람한테 물어볼 정도로 궁금했다는 얘기다. 그 질문이 어떤 인격이 담지되든 말든을 떠나서. 일의 양을 따져 받는 돈의 수준이 어떤지를 비교하는 게 의미없는 직업이지만, 숫자에서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그것은 그렇게 크게 부당한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그 사람에겐 족한 것이다. 


3. 늙었다는 걸 가끔 깨닫는다. 늙은 것이 아니고 나이가 드는 걸거다. 수완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다. 지난 과거를 애써 미화하려고 했던 내 낡은 버릇들을 떠올려본다. 사람을 만나는 게 부쩍 더 어려워진다.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중요해지는 것은, 슬프기까지는 아니지만 어색한 일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가끔 늦잠을 자거나 할 때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하러 들어가는 길목에서 뜬금없이 전 남자친구들에게 밥 먹었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뭘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매일 편하게 연락하는 친구인양 아무렇지 않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시간이 삭히고 사회가 조각한 '성숙'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초침 단위로 움직이는 생활을 하다보니 그만큼 시간을 들여 교제한 사람들과 맺은 관계들이 아쉽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면 배타적인 스킨십 여하를 제외하곤 철저히 '독보적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맺어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들이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만날 운명이라는 생각도 안했던 것 같다. 그런 관계를 가져보지 않았다고 해서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들어 친한 사람들과 연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만났던 사람들과 속절없이 끊어지고 마는 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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