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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소년의 죽음과 멜랑콜리

7살 신원영 군이 끝내 죽은 채로 발견됐다. 3월이 왔지만 봄이 오지 않은 평택의 동토에서,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왼쪽 이마에 거즈를 붙인 채로 옆으로 고꾸러져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했다. 

"경찰 생활 하면서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 사건은 처음이었어요." 

경기도 평택서는 강력 사건들이 그래도 좀 있는 경찰서다. 미군과 관련한 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세상 이목을 집중시키는 몇 사건들로 그래도 기자들을 몇차례 치러 본 베테랑 형사들이 포진해 있다. 

한숨을 연달아 푹푹 내쉬는 강력반 형사들의 목소리가 괜히 떨리는 게 아니었다. 

"살해는 안했어요"라고 말했던 여자와 책임감 없던 아버지가 끝내 어린 소년을 땅에 파묻었다. 

얼어붙은 땅에서 발견된 원영이는 발견된지 하루만에 조촐하게 화장됐다. 어린 소년은 끝까지 추웠다. 


여자가 끝내 자백했다는 연락을 받은 새벽엔 마침 야근 중이었다. 속보가 나오기 전 미리 경찰서로 출발했다. 

호기심 어리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7살 소년을 찾아 드론도, 해양 수색대도 동원됐지만 

소년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원영이의 죽음이 유독 더 가슴아팠던 건 그의 생전 기록을 살펴봤던 까닭이다. 

후배 기자가 구해 온 생전 원영 군 남매의 '상담 일지'에는 남매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을 호소하는 남매는 센터에 가지 못하게 하는 계모 때문에 

"빌려준 돈을 받아야 한다"며 거짓말까지 쳤다. 계모는 아이는 보내지 않겠지만 빌린 돈은 갚으라며 

센터 교사에게 문자도 했었다. 화장실에 석달 간 갇혀 있었던 원영이는 그 작은 관심이 너무나 절실했다. 

거듭된 결석과 친부와 계모의 강력한 항의, 우리 애 우리가 키울테니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에 

센터는 원영 남매에 대한 관리 종결 신청을 내고 말았다. 4월부터 7개월 간. 원영이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던 

그 7개월 간 소년은 오롯이 계모와 친부의 손에서만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양말에 운동화까지 신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묘소 오른쪽 5m 떨어진 지점 50cm 아래 있던 

원영이를 찾기까지의 2시간동안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질 만큼 추웠다. 

표백제, 찬물 세례까지 받았던 원영이의 사인은 기아였다. 피하 지방이 극도로 없었다고 한다. 

작고, 가냘픈 이 어린 아이에 대한 적의와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계모는 정말 악당이었을까? 

소년은 떠났고 아이에게 가혹한 사회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회가 나는 아직까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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