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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기획서 쓰다가

가끔 너무 완고해 취재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해도 만나고 나면 슬몃 미소가 지어지는 이상한 취재원들이 있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런 취재원들이 순간마다 겪는 회의감을 극복할 수 있는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기사를 쓸 때면 뚜껑을 열었을 때부터 아예 쓸 수 없는 이른바 '얘기가 안 되는' 기사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제외했을 때 기사를 썼을 때 누군가의 로스와 사회전체적인 편익을 따지는 '저울질 해야 하는' 기사, 그리고 쓸 것이냐의 기로에서 '순전히 의지에 달린' 기사들이 있다. 기사쓴지 1년 채 되지 않았지만 난 저 세 가지를 다 써본 것 같다. 세 가지를 쓰기 전에 할애하는 고민과 시간에는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다. 정도의 차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테크닉도, 이데올로기도 부족하다. 사회 첫 발을 뛰어난 테크니션과 뛰어난 이데올로거가 있는 조직에서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과분한 행운이었다. 결국 그런 것들을 채워줄 '사람'을 어떻게 얻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는 오롯이 나의 몫일 것이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역시 '쓰는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쓰는 것은 늘 어렵다. 그 과정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주말마다 그렇게 박박 책들을 사모으면서도 생각의 단초를 열어줄 소스들을 성큼 들여다보길 주춤하는 것. 이 비겁함이 요새는 가장 내가 극복해야 할 숙제다. 


한 선배가 work ethic이라는 말을 했다. '근태'라는 말로는 과소하고 '직업 윤리'라는 말로는 과다하다. 번역이 어렵지만 work ethic이라는 표현이 적확한 것 같다. 현장과 출입처에서 이 work ethic이 좋은 기자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하나만 고르라한다면 work ethic이 있기보다는 잘하고 싶다. 나같은 기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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