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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좋은 글을 쓰고싶어


좋은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지수함수 형태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글쓰기도 많이 하지 않았고 좋은 글도 다짐한 만큼 많이는 읽지 않은터라 어떤 통찰을 얻었다는 듯 언급하는 것이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부단한 읽기를 통해 글쓰기가 언젠가부터 급수적으로 고양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건 사실.

구조와 짜임의 미학은 사고방식의 미학과도 같아서 생각을 바른 방향으로 직조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문단 간 연결과 각 문단의 배치 함의에 해당하는 '구조'라는 것이 사고방식의 적절성을 담지하고 있다면 문체는 좀더 풍부하게 그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장치다. 어떤 식의 문장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는 문체를 보면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이 구조와 문체라는 것이 합치되기도 하고 애매하게 걸쳐져 있기도 해서 명료하게 이분화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아니 사실상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접속사의 사용법, 예화나 다른 차원의 생각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보면 문체가 사고방식을 제어하는 경우나, 사고방식이 문체를 제어하는 경우를 왕왕 발견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좋은 글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의 양상은 갖가지 방식으로 관념에 맺혀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고 논리적 비약이 어느정도 가지쳐진, '볼만한 글'의 하한선을 통과한 글이라면 그때부터 어떤 글을 읽어왔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대화들을 나누었는지에 따라 '좋은 글'의 기준이 나뉜다. 내 경우 물론 아직 확정적인 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경향성을 따른다면, 메시지를 훈계조로 전하는 메시지나 건조한 스트레이트 문장들로 이뤄진 좋은 에세이보다 다소 직설적이지 않고 비유를 많이 활용하더라도 문체의 미학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따라서 글쓴이의 내면 풍경이 되도록 많이 펼쳐진 형식의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 사람을 파악하려는 오래된 습관 때문인지 완벽하게 잘 건축됐으나 서술자의 내면이 은폐되거나 인공적인 서술자를 내세우는 경우보다 자의식 과잉이 되지 않는 선에서(이건 정말 중요하다. 자의식 과잉으로 점철된 글을 보는 고통은 정말 극심하다.)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는 글에 끌린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요즘 김훈의 에세이를 빌려 읽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된 것이라 사료된다. 필사까지 하면서 그의 글의 매력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 문체를 단단히 뜯어볼 요량으로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 물론 내 게으름이나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글이라면 금세 읽지 않았을까? 좋은 글에 대한 열망이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이라 글쓰기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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