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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냉장고에 대한 문명사적 비판 유자차에 된통 당한 후 냉장고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을 차에 경향신문에서 강신주 박사의 한 칼럼을 발견했다. 나 못지 않게 냉장고에 엄청난 개탄을 쏟아붓고 있는 글이라 재미있었다. 옮겨본다. 축적에 대한 욕구, 잘못된 경제 관념의 민낯,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망각하게 되는 몹쓸 기억력을 일깨우는 장치..... 강신주 박사에게 냉장고가 자본주의 생활 양식의 타성이라면 나에게는 자아 성찰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철학자 강신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7212131165&code=990100 +) 이에 대한 또다른 경향 기명 칼럼니스트의 칼럼 삶의 연속성과 언어의 불연속.. 더보기
활자 중독증에 대한 소망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활자에 눈이 맺혀 무슨 글이든 마침표까지 읽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강박을 가진 사람들. 처음 이런 것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부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질병의 형태로라도 활자를 보고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강제적으로나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닥 가득 쌓인 신문들을 보고 있자니 유독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슬슬 넘겨서 보면 가슴 뛰고 흥미를 잡아끄는 제목들이 많은데 막상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읽으려 들면 못내 힘이 겹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즐거움마저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좋은 글을 보고 느끼는 위축도 이 연장선인 것 같다. 뭐랄까 이제는 멋지고 훌륭한 글을 보면 감탄은 잠시, 이걸 어떻게 썼을까 하는 고민이 자동 실시되면서 그 글을 쓰기까.. 더보기
건강에 대한 명상 으레 형이상학적 대화 나누기를 좋아하는 내게 진지하게 리액션도 쳐주며 거기다 무려 계도까지 시도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좀 좋아하는 어떤 선배한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결국 행복으로 시작해서 없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었는데 그 선배는 예상 밖으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음"이라고 답했다. 나는 대개 죽음에서 유발되는 공포와 두려움을 경시했다. 죽음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다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어서였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철없고 뭘 모르는 생각이었는지. 죽음을 불사한 온갖 낭만적 로만스들과 예의 형이상학적 기질 때문에 죽음을 더욱 더 형상 너머의 형상으로 인지해버린 탓일까. 실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죽음은, 아직.. 더보기
냉장고의 배신 아침나절부터 경고받았던 국지성 호우가 지금에야 쏟아진다. 시원한 밤 공기를 가르는 빗소리에 다소 지쳤던 기분이 쓸려가는 느낌이다. 하루종일 아리던 허리도 이제 좀 낫다. 모든 일을 즐겁게 해낼 수 있는 것도 마음을 조종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관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회피하려는 마음에게 낙관론을 강제하며 익숙해지도록 길들이면 어찌어찌 무디게 고난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게 된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운치를 더할 생각에 유자차를 마시고 싶었다. 산 지 1년 정도 된 꿀유자 단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쩍 달라붙은 뚜껑을 힘겹게 돌려 열었는데 새끼 손톱만한 허연 곰팡이가 하나 피어있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나를 배신한다. 당근도, 토마토도, 사과도 그랬다. 그리고 물론, 유자차.. 더보기
좋은 글을 쓰고싶어 좋은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지수함수 형태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글쓰기도 많이 하지 않았고 좋은 글도 다짐한 만큼 많이는 읽지 않은터라 어떤 통찰을 얻었다는 듯 언급하는 것이 민망한 일이긴 하지만 부단한 읽기를 통해 글쓰기가 언젠가부터 급수적으로 고양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건 사실. 구조와 짜임의 미학은 사고방식의 미학과도 같아서 생각을 바른 방향으로 직조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문단 간 연결과 각 문단의 배치 함의에 해당하는 '구조'라는 것이 사고방식의 적절성을 담지하고 있다면 문체는 좀더 풍부하게 그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장치다. 어떤 식의 문장에 매력을 느끼고, 어떤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는 문체를 보면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이 구조와 문체라는 것이 합.. 더보기
재미있는 사건 24살 여자애들은 언제부터인가 급격히 성숙해진다. 기승전연애류로 흔히 귀결되곤 했던 대화가 차츰 무거워지고 콤팩트 파우더 팩트보다 중요한 것이 피부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되는 시점. 학교에서도 이제 노땅 소리를 들으며 13학번에게 "몇 학번이시라구요?"와 같은 리액션과 함께 괴생명체에게나 던질 법한 시선 공격을 간혹 시전받게되는 24살 여자애들은 종종 이 성숙으로의 떠밀림을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든 체험하게 된다. '질릴 만큼' 연애해 본 친구도 어느덧 하나 둘씩 등장한다. 연애 횟수가 얼마이든, 시시했건 찌질했건 진지했건 간에 몇 차례 술을 앞에다 두고 친구들의 연애담을 듣다보면 나름의 관록과 완숙한 연애관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교복을 입은 유승호가 아무리 훌륭하고 견실해도 어쩐지 '멋지다'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