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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만남들 한량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어디든 마음대로 가고 누구든 만나면서 '공부'의 명목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신문을 줄치며 읽는 것도, 원고지에 글을 박박 쓰는 것도 질리던 차였다. 어딘가 나갈 좋은 계기가 필요했는데 오늘은 두루 좋은 날이었다. 점심 때는 인턴 동기들과 우리를 총괄했던 분과의 식사 약속이 있었고 오후에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논설위원의 강연과 뒤풀이가 있었다. 하루를 오롯이 시청역에서 보냈다. 인턴이 좋은 점이 많다. 식구가 아니라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물론 더 크지만 식구가 아니라서 환대받는 점도 분명 있다. 우리는 오늘도 '꿈'을 팔아 선배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쥐어드렸다. 사회생활은 많은 것들을 거래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반가움으로 포장한 절박함이 오늘도 동기들의 얼굴을 덮었다.. 더보기
다시 추워진 토요일 도서관에서 낡아빠진 김영하 소설집을 빌렸다. 독자들에게 이렇게 낡아빠지도록 읽힐 수 있는 작가라면 글 쓸 맛이 날 것 같다. 책 군데군데는 몇 번 째 빌렸는지 모를 어떤 사람의 추임새가 연필로 적혀있었는데 자기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줄을 긋고 "ㅋㅋㅋ"를 적거나 하는 식이었다. 직접 코멘트보다는 밑줄이 더 많았다. 추운 나라의 말을 배웠다. 는 표현에 밑줄을 긋고 "ㅋㅋㅋ"를 적어두었던 그는 같은 글씨체로소설 마지막 장에서 손에 힘을 빼고 스치듯 연필로 "호출에 비해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 깊이에 있어서는 좀 더 얕아지고 산업적으로 변한 것 같다"며 나름의 일갈을 해놓았다. 빌린 책에 자신의 감상을 쏟아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선 연필을 들고 적어도 뭔가를 써내려갈 수 있는.. 더보기
엄마한테 잘하자 나쁜 년들은 힘들 때만 연락한다. 나도 나쁜 년이라 평소엔 도서관이다, 스터디다, 앞에 사람있다, 밥 먹는다, 지각이다 등 각종 이유로 전화도 황급히 끊거나 잘 안 받으면서 우울하거나 짜증날 때만 엄마를 먼저 찾는다. 그러다보니 엄마가 읽고 듣는 내 얘기엔 짜증난,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다. 요즘은 가끔 여자로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원래부터 여자였는데. 나는 나쁜 년이라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인간 몫의 숨을 쉬었고 밥을 먹었을 엄마의 육체를 생각했다. 엄마의 코와 손가락과 머리카락과 발가락을 생각했다. '부모'라는 어떤 부채를 나는 엄마에게 두 세배로 받아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동안 팟캐스트를 들으며 울컥 목울대가 막혔다. 발 얘기였다. 발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 더보기
박문각 시사상식과 박민규 사이 좋은 카페의 좋은 자리를 찾았다. 3분마다 떡볶이를 휘젓는 아줌마와 그 옆에서 성경 공부를 권하는 양복입은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좋은 시절이다. 이제 구형으로 전락한 내 핑크색 넷북과 거대한 사이즈의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으면 그럭저럭 시간은 잘 간다. 조앤 롤링처럼 해리포터 시리즈라도 써내야할 것 같다. 쓸모 있는 것을 쓰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새내기들의 바퀴벌레같은 구동력을 핑계삼아 수업 전 읽을 책들을 구하는 서점 순례를 매주 떠나고 있다. 중도는 일찌감치 털렸다. 전자책까지 죄다 쓸어갔다. 학기초의 이 열정은 아마 꽃망울이 터지는 4월 초쯤이면 다소 수그러들 것이다. 낯익은 책 제목들을 볼 때마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들어 표지 사진을 찍어대는 습관도 익숙해졌다. 읽고 싶은 책이 많.. 더보기
24시간이 모자라 라고 하면 좀 오바겠지만 하루의 목표 달성치가 크게 자아과신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집에 신문이 쌓여가는 속도를 보면 확실하게 가늠 가능하다. 지금까지 못자고 있는데 내일 1.5교시는 무사히 갔으면 좋겠다. 몇 주 전에 신문에 관해서는 나는 활자중독증이라고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적어도 그 말은 사실일 만큼 예전보다 신문 읽기가 더 꼼꼼해졌다. 할애하는 시간 만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데. 예전부터 이 시간을 퍽 고대하고 기다려왔다. 예상이 맞았다. 늘 부담감으로 짓눌려있기야 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일단은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좋다. 오늘은 연체료 300원을 결제하고 책을 두 권 빌렸다. 연체료엔 이자가 붙지 않아서 다행이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질식할 것 같았는데 예전부터 손꼽.. 더보기
3월 10주가 끝났다. 짧은 시간이었다. 얘깃거리도, 읽을거리도, 볼거리도 많았다. 앞으로도 더 많다. 선배가 잔뜩 안겨주신 글들을 읽어야 한다. 매력적인 사람들 틈에서 지겨울 겨를이 없었다. 문사로도 사색했고 생활인으로도 고민했다. 마지막에는 기운이 빠져서, 다시 어떻게 이 시간들을 감당해내나 0.0001초간 고민도 했지만 눈이 번쩍 뜨인 3월의 아침은 생각보다 싱그러웠다. 동시대성을 어떻게 통찰해내냐는 나의 물음에 B선배는 잠깐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말씀하셨다. "놓치지만 않으면 돼"참신한 외곽적 시선들을 보물처럼 그러모았다. 해 뜨기 전 출근하면서 아침이 그렇게 출출한 시간이라는 것도 간만에 깨달았다. 세븐 일레븐 편의점 알바는 매일 새벽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며 편의점을 들르는 나를 볼 때마다 카운터.. 더보기
일상의 행복이라는 것 할 말이 너무 많으면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여러가지 의무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현장은 가장 숭고하다. 퇴근 길에 지하철 문가에 서서 귀에 꽂고 듣는 여러 곡들집 앞에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간단히 늦은 저녁식사가 되는 오뎅과 호떡까무룩 잠들기 직전 읽어내리는, 안아버리고 싶은 글들의 흘러내리는 활 자 들 피곤해서 부서질 것 같은 하루들이지만 적어도, 썩, 행복하다 더보기
올해의 OOO 2013년 계사년이 이렇게 간다. 유독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었던 한 해. 올해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올해의 영화: 그래비티올해의 미드: 굿와이프올해의 한드: 응답하라 1994올해의 경험: MBC올해의 허탈: SBS올해의 대화: 손석희 사장, "본때를 보여줄게"올해의 재발견: 회기동 K올해의 노래: 너에게(성시경)올해의 이상형: 변상욱올해의 고민: 쉬레기냐 칠봉이냐올해의 장소: 시청역올해의 한숨: 기호논리학올해의 국가: 캐나다올해의 달성: 앞머리 안 자르기올해의 수업: 문화비평의 이해올해의 고난: 졸업논문올해의 여행: 힐링의 통영올해의 뉴페이스: 서초동 Y올해의 방문: 분당서울대학교병원올해의 논설위원: 권석천올해의 칼럼: 조선 양상훈 칼럼 올해의 음반: 버스커버스커 2집올해의 기사: 영남제분.. 더보기
레포트를 쓰다가 마지막 레포트를 구상하다 2013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로이 인지했다. 이번 학기 들뢰즈 텍스트를 가까이하며 인지로서, 그 다음은 체험으로서 분명히 느끼고 있는 바는 바로 사유의 존재 양식은 정말이지 강도의 체계를 따르고 있다는 확신이 좀 더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레포트 완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몰두하려는 정신은 끊임없이 재현의 방식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한다. 탈주의 방식으로 튕겨져나간 사유의 차이소들은 저마다 다른 글이나 담론을 형성하고자 하는 '생성'의 노마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유독 이번 학기 레포트를 쓰면서 영감을 받은 조각글들을 하나 둘 찌그렸나 보다. 임시저장 목록에 알알이 박혀있는 저 글 제목들이 들뢰즈의 이론을 완벽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관련 .. 더보기
스케줄러를 샀다 생일이 다가오면 늘 스케줄러를 장만하는 일을 서둘렀다. 이번에도 창 밖에 눈이 오는 걸 보면서 광화문에 간 김에 서점에 들렀다.스케줄러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운 편이라 서점을 몇바퀴 돌았다. 월간 달력은 주간면이랑 따로 분리돼 있어야 하고, 주간 칸은 넉넉하되 따로 뒤에는 메모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한참을 고민하고, 몇 개를 들었다놨다가 결국 2012년과 2013년에 신문사에서 받아 썼던 것과 같은 스케줄러를 샀다. 크기는 조금 작은 걸로. 색깔은 따뜻한 걸로. 스케줄러를 사서 처음 펼칠 때 행복하다. 계획에 가장 많이 할애하는 사람으로서. 표지색과 어울리는 네이비색 펜을 들고, 첫 장을 펴고, 좋아하는 선배가 페이스북에 올려둔 글귀를 옮겨 적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로 시작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