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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유리창 위의 벌레 1.정체를 알 수 없는 연두색 유충 하나가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카페 바깥 유리창에 붙어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몸체가 많이 흔들리지만 꿋꿋이 유리창에 몸을 붙이고 있다. 유충이지만 보기가 께름칙해 포스트잇을 붙여놨더니 붙여놓지 않은 쪽으로 움직여 또 그렇게 한참을 붙어있다. 이 벌레조차도 지켜보고 싶은 유리창 속의 세상이 있다는 듯. 오전 나절을 줄곧 이 유리창에 붙어있는 이 빨간 눈의 벌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작은 녹색 몸체 안에 스민 맹목적이고 순수한 생명의 충동을 느낀다. 어리둥절하게 생명을 부여받고 단지 살아남는다는 충동으로 사는 것. 어떤 고귀한 설명이 부연되더라도 인간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5시간동안 유리창에 붙어 있는 벌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더보기
스트레스의 원인 방이 어질러져 있으면 밖에 나와 있어도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제대로 정돈되지 못한 글감들 역시 장기적인 스트레스를 초래한다. 대청소를 하다 지쳐서 쫓기듯 나와 글을 쓰고 있다. 써봐야겠다 혹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혹은 써야하고 읽어야 할 글들에 대한 '퀘스트 미완성'이 내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다. 집에 한가득 쌓인 신문들도 생각나고 짜증나 죽겠다. 머리가 좋아서 일필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이렇게 짜증이 날 때는 맛있는 걸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먹고나서 더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짜증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이다.신문이랑 책은 미루지 않고 그날그날 다 읽는 것이 최고다. 언시생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성실성을 시험받는 과정인 것 같다. 신문을 그전에 얼마.. 더보기
병동에서 병원에서의 생활이 길게 지속되고 있다. 간병인 노릇을 한 것도 오늘로 5일차다. 이곳은 아침 6시가 되면 금세 부산해지고만다. 아픔을 참아내는 사람들의 침묵 때문에 공기는 더 무겁다. 한 발자국 너머에 바로 세상이 널려있는데 이상하게 여기만 고립돼있다. 꼬깃한 신문들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다. 어른들은 늙었다. 슬픈 일이다. 어느덧 내가 집안을 대표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목에 복숭아씨가 걸린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는 엄마가 와서, 지하에서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리고 권태에 대해 길게 얘기했다. 늦은 밤 엄마를 버스에 태워보내고 종종종 다시 육교를 건너 병원으로 돌아오는데, 뭉클한 게 올라왔다. 내일은 해야할 일이 많다. 더보기
기레기 노이로제 어쩌다 혼자 간병인 노릇을 하고 있다. 병원 간이침대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다. 병실이 쾌적하고 좋은 편이라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밤에 푹 잠들기는 고역이다. 하긴 원래 밤에 잠을 잘 잔 적이 까마득하다. 내가 있는 5인실의 풍경이 이채롭다. 이 병원 교수이자 이사 출신이라는 할아버지의 부인이 함께 입원을 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이분이 어디가 아프다고 앓으실 때마다 각 병동에서 의사들이 재빨리 소집된다.젊은 의사건 나이 많은 의사건 하루에도 몇명씩 새로운 사람이 왔다갔다한다. 창가쪽 할머니는 이 방 사람들한테 "빽 최고인 분"으로 통한다. 교수님이셨던 할아버지는 매일 병원을 방문해 정신도 온전찮은 아내를 돌보시는데 짬이 날때마다 신문 칼럼면을 반에반절씩 접어 연필로 줄을 그으면서 읽는다. 바로.. 더보기
정장을 입은 느낌 K 선생님의 진단이 적확하다. 나의 글부터, 전반적인 나의 애티튜드 일반이 보완해야 할 점이다. "정장을 입은 느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더보기
과제를 하다가 김영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읽은 단편들과 장편들을 모으고 적합한 접점을 찾아본다. '작가론'을 쓸 때 작품 안에서만 단서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와 나의 만남이 작품만이 아닌 다른 방식이 많을 경우 더욱 그렇다. 팟캐스트를 진행했다면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그 목소리대로 작품이 읽히기 마련이다. 행간에 스민 프로이트적 분석을 내놓기 마련이다. 일전의 인터뷰 기사들을 참조하게 되기 마련이다. '작품성'이란 것처럼 허구적인 것도 없다. 김영하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이른바 최고은 논쟁이란 기사 꾸러미를 발견했다. 남은 김치와 쌀이 있으면 더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겨두고 발견돼 사회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녀가 김영하의 한예종 제자였다. 문학평론가 조영일과의 논쟁이었다. 애초에 최고은 작가를 두고 .. 더보기
읽고 싶은 책 시도때도 없는 책부림 난동. 읽고 싶은 테마는 자꾸 떠오른다. 체할 것 같다. 5월 광주를 다시 읽다 현대 비평의 조각들 일베를 이해하기 위하여 사회심리학 특선 한국 자유주의 연구 다시, 자본주의 연구 한국경제의 핵심 더보기
오! 월이다 좋아하는 선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언제쯤 술을 얻어먹을 수 있냐고. 요즘따라 기운들이 없는 모양이었다. 슬픈 하루들이 반복된다고 했다. 나도 별달리 기운차릴 일 없는 나날들이지만 선배는 기운 내시라고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선배는 희망을 만들고 계시잖아요, 라고 말했다. 선배는 술 한잔 하고싶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다시 한번 나에게도 기운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우리가 기운을 내야 한다. 희망은 좋은 말이다. 죽으나 살으나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야 하는 한 재건할 수밖에 없다. 더 좋은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재건할 수 있다. 재건해야 한다. 희망해야 한다. 어쩌면 나보다 더 이상주의 성향을 가진 다른 선배가 있는데 한동안 이 선배와는 얘기를 많이 하지 못했다. 공감 능력이 탁월한 이 선배도 무진 속을 .. 더보기
두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 이번주는 장례식 두 번, 결혼식 한 번이 있다. 어제는 꽤 오랜만에 혜화에 다녀왔다. 아는 선배의 장례식. 집에 돌아와 검은 정장 투피스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장례식으로 대학로를 간 건 처음이었다. 상복을 입은 친구 둘과 함께 왁자지껄한 청년들 틈 사이로 병원을 향해 걸어갔다. 장례식장이 대학로에 있다니 어색했다. 생사가 담장 하나 차이였다. 술 한잔 같이 했던 선배였지만 절친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사이였다. 갈 것인가. 고민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선배 얼굴이 선명해 안 갈 수가 없었다. 반가운 얼굴들도 꽤 보았다. 빈소에 모인 친구들도 나랑 처지가 비슷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우울증이 이 선배의 장례로 정점을 찍었다. 우울했을 것이 틀림없는 친구들이 저마다 먼 선배의 영정 앞에 절.. 더보기
세월호 침몰 사건 단상 손으로 일기를 쓰자고 다짐한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뭔가를 쓰고 싶을 때면 꼭 넷북을 펼쳐들게 된다.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했다. 오전 8시 30분경 바다에 잠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다에 있다. 내내 울리는 속보 알람들과 방송으로 보이는 가족들의 탄식들 속에서 어이없게도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그저 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갑갑하고 허무하고 마음이 미어졌지만 어이없게도 내가 지금 이 순간 진도에서 현장을 목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참담했다. 초동 구조 작업 미흡과 책임자 엄벌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퍼붓고 있다. 보험금 수령 액수를 보도했던 mbc도 cnn의 수온에 따른 생존시간 보도와 비교당하며 줄차게 까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두 달 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