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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요즘 단상 1. 글을 쓸 때는 타박할 것 투성이다. 손이 시려워서, 발이 시려워서 글을 쓰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의자가 지나치게 작아서, 또는 높아서 또는 헹거에 옷이 너무 많이 걸려 있는 바람에 주의가 사나워서, bgm으로 틀어놓은 킹스오브컨비니언스의 곡들이 너무 졸려서 등. 그냥 갖다댈래도 상상력이 부족해 대지 못할 온갖 핑계들이 떠오른다. 그래도 수많은 '리포트'라는 걸 제출하며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었던 학사의 견지에서 이러한 갖가지 잡다한 타박과 핑계들은 '좋은 시작'일 수 있다. 글을 쓰려는 찰나, 마침내야 생각이 시작됐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자정을 넘기지 않고도 집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하다. 남는 시간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활용.. 더보기
기획서 쓰다가 가끔 너무 완고해 취재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해도 만나고 나면 슬몃 미소가 지어지는 이상한 취재원들이 있다. 그리고 종래에는 그런 취재원들이 순간마다 겪는 회의감을 극복할 수 있는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기사를 쓸 때면 뚜껑을 열었을 때부터 아예 쓸 수 없는 이른바 '얘기가 안 되는' 기사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제외했을 때 기사를 썼을 때 누군가의 로스와 사회전체적인 편익을 따지는 '저울질 해야 하는' 기사, 그리고 쓸 것이냐의 기로에서 '순전히 의지에 달린' 기사들이 있다. 기사쓴지 1년 채 되지 않았지만 난 저 세 가지를 다 써본 것 같다. 세 가지를 쓰기 전에 할애하는 고민과 시간에는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다. 정도의 차이.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테크닉도, 이데올로기도 부족하다. 사회 첫 발을 .. 더보기
이것 저것 요즘 사는 이야기 오랜만에 이틀 모두 쉴 수 있는 주말이 오면 금요일 밤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급속도로 추워진 날씨 탓에 마침 적당히 입을 옷이 없어서 고민을 하던 차였는데. 어제는 오늘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쇼핑몰을 걸어다니고 카페에서 소설을 한 권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온수매트를 샀다. 새 이불 시트를 꺼내 깔고, 온수매트를 설치하고, 이불을 덮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내 방을 보는 것은 지금 현재 내 삶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행복의 요소다. 마트에서 사온 적당한 와인을 따고, 모 선배가 선물해 준 서경식 교수의 에세이를 몇 장 읽다 따뜻하게 잠들었다. 오늘은 서늘한 감촉의 공기가 뺨에 닿은 뒤 파란 하늘을 보며 눈을 떴고 저녁 약속을 나가기 전에 이불 빨래와 옷장 정리를 할 생각이다. 객.. 더보기
편지를 쓰고 싶은 호텔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훌륭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처음 들어왔을 때 알싸하게 코를 스치던 특유의 시그니처 향과 정갈하게 깎아놓은 연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깨끗한 종이와 결을 따라 예쁘게 깎아 놓은 연필을 보니 절로 책상에 의자를 바추 당겨 앉아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든다. 만년필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나는 깨끗한 종이에 서걱서걱, 글자를 쓰는 펜 소리가 좋다. 캐런 앤의 앨범을 틀어 놓았다. C가 추천한 Josh Rouse의 앨범은 도착 첫 날 주구장창 들었고, 지금은 Acoustic cafe의 앨범과 캐런 앤을 번갈아 듣고 있다. 회사 MT 게임 상품으로 받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꽤 쓸 만하다. 샤워를 할 때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쇼파에 기대 책을 읽을 때나.. 더보기
졸업식에 다녀왔다 졸업식에 다녀왔다. 왁자지껄, 한바탕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서 지난 2월이 불쑥 떠올랐다. 딱 여섯 달 전 내가 저들처럼 졸업 가운을 두르고 꽃다발을 손에 안은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렇지만 갑갑한 마음으로 점심밥이 도저히 목 뒤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거다. 손에 꽃다발을 쥐고 사진을 찍다가도 두 시간에 한번씩 소방서에 전화를 돌리고 선배에게 보고하는 나를 친구들이 신기하게 쳐다봤었다. 추웠다. 오늘은 K의 졸업식이었다. 어젯밤 41층 꼭대기에서 황홀한 야경을 바라볼 동안 이미 오늘의 꽃순이는 나로 정해졌다. 아침 일찍 신촌으로 가 예쁜 꽃을 질렀다. 돈을 벌어서 좋은 건 이런 것이다. 예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말이 나온 .. 더보기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팽팽한 이때, 어제는 오랜만의 휴일을 즐기겠다고 오전 나절부터 집을 나섰다. 사람이 이렇다. 기자라도 별 수 없다. 오전부터 정치부 선배들이 이것저것 챙겨 올리는 취재정보를 보고 있으면 이 갈등도 금세 다 봉합될 것 같다. 눈빛을 나눴던 삼곶리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아직도 그곳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고 해서 바로 교전이 일어나는 뻔한 결과는 없을 거라 믿어본다. 어제 나눴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준비하던 시절 만큼 내가 기사와 취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뼈아픈 각성을 했다. 노력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S는 말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이 S의 화법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유.. 더보기
누가 그 시간에 대해 묻거든 2015 책 기고 깨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들키는 건 창피하다. 전화가 울리며 어디선가 나를 찾는 선배의 이름이 뜨면 본능적으로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냅다 뛰었다. 전화는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아야 한다. 그렇게 번개처럼 뛰어 들어간 곳에서 웅크린 채 선배들에게 무의식의 저변까지 ‘스캔’ 당하는 기분으로 한참동안 통화를 마치고 나면, 정작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길을 헤맸다. 한가득 다른 과제를 짊어지고, 더할 나위 없는 자괴감을 느끼며 터덜터덜 전화를 받고 돌아오는 길엔, 민원인 대기실 의자에 반쯤 몸을 걸치고 피곤함이 묻어 있는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은 같은 처지의 동기들을 볼 수 있었다. 긴 겨울이었지만 짧은 6개월이었다. 반년이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두 시간 단위의 .. 더보기
무슨 기사를 쓰고 싶니? 내근을 한다고 건널목 자리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선배들마다 한 마디씩 던질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나오는 질문은 대개 비슷하다. 넌 어떤 기사를 쓰고 싶니. 어디를 가고 싶었어. 이제 좀 웃네. 할만하냐.한창 준비하던 때야 무슨 기사를 쓰고 싶니와 어떤 기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에 대답은 5초가 되기 전에 발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새는 여간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리석은 지난날 내가 뿌렸던 대답의 씨앗들을 돌이키면..(^^) 어느 부서건 어떤 기사를 쓰건 기자에게 요구되는 애티튜드는 대체로 비슷하다. 물론 매체별로 조금씩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수습을 거치고 숨 쉴 틈도 없이 깨지면서 내가 분명하게 하나 깨달은 것은, 무언가를 각잡고 하는 것, 그러니까 수험생 시절 공부를 한답시고 책상을 닦고.. 더보기
영화 두 편과 일상 오늘은 친한 동료 둘을 만나고, 좋은 향수를 사고 영화 한 편을 새로 봤다. 샌안드레아스라는 재난 영화였는데 크게 훌륭하지도, 크게 보기 민망할 정도도 아니었다. 흔하디 흔한 재난 영화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영화. 감정선은 둔탁하고, 갈등은 너무 예상 가능했다. 크게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집으로 나서는 길이 이상하게 쓸쓸했다. 엄마가 보낸 할아버지 78번째 생일 파티 사진을 봤다. 흰 머리에 전보다 훨씬 야윈 몸을 보니 더 쓸쓸했다.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태워다 주는 택시 운전기사의 뒷모습이 슬프고육교 앞 항상 불이 켜진 24시간 편의점을 보는 것이 슬프고, 그 안에 있는 핏기 없는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슬프고 쇼핑백을 거머 쥔 내 손가락이 슬프고,.. 더보기
어느덧 6월 시간이 빨리 흘러 어느덧 6월이 되었다. 그동안 수습을 뗐고, 수많은 술자리를 거쳤고, 입봉을 했다. 블로그에는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늘 조금씩 일기를 찌그리다 지우기 일쑤였다. 생각이 너무 많은 까닭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까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활은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임감의 강도와 무게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세고, 무거워졌다는 점이다. 달라진 위상에 견주어 별로 달라지지 않은 능력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한테 푸념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발언으로 그렇게 많이 쪼였던 나지만 웃긴 건 6개월 간 그럴듯한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쓰기를 자꾸 미루다보면 언젠가 꼭 써야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