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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스펙타클한 한 주 폭풍같은 고민에 휩싸여 하얀 밤을 새우기 부지기수였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다 쏟아부었다. 그 사이 시험 하나, 논문 심사 하나, 실무 면접 하나가 지나갔다. 한번 먹었던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게 유독 주의를 기울였다. 비단 하나의 이벤트로만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 제법 효과가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임했다. 이 일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도 남았을, 또 나만큼이나 고민하며 밤을 새운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떠올렸다. 힘들었고 지쳤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히 살아온 일주일이라 감히 자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은 어찌됐든 치렀고, 논문은 통과됐고, 면접도 끝났다. 오늘은 긴긴 샤워를 하고 나서 시원한 맥주를 마셔야지. 더보기
첫인상이 중요해요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대단한 계획이나 전략을 가지고 뭘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순간순간 쏜살같이 날아가버리는 시간이 층층이 쌓여 어느새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형성하고 만다. 비교적 균질적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그 나름의 생활 조건의 범위 안에서 불현듯 어떤 특정한 것에 이끌리고, 그것으로부터 마침내 소위 '다원주의' 사회를 이루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개성들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퍽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개성의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곧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는 듯 생각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자소서를 몇 차례 쓰는데도 아직도 자소서가 제일 어렵다. 차라리 친구 자소서를 대신 쓰라면 쉽겠다. 자신에 대한 기만일까, 타인에 .. 더보기
꼭 잊어버리는 것들 1. 충전기 챙겨다니기2. 엄마한테 먼저 전화하기3. 아침에 유산균, 철분제 챙겨먹기 외로운 사람들이나 외롭지 않은 사람들 모두 만나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그 관계의 질. 관계들에서 충분한 내밀함과 친밀함을 느끼지 않을 때 사람들은 줄곧 외로움을 느낀다. 상습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계 맺음 방식을 돌아볼 일이다. 라는 구절을 트위터에서 발견. 현명하고 지당한 말이지고. 하고 싶은 것.1. 이승우, 이기호 소설, 권보드래 교수 책 두 권 읽고 싶다. 2. 밀란 쿤데라 하드커버 시리즈 구매 ㅠㅠ.. 예뻐.. ㅠㅠ 3. 등산. 4. 한얼언니랑 유럽여행 다시 가기. 논문이나 쓰자. 더보기
긴 연휴의 끝 동생은 좀 더 자라있었다. 언제 말이나 제대로 할까 했던 꼬마가 이제 제법 대화도 하고 본인 의사표현도 분명히 한다. 키도 컸다. 기분 탓인지 누나에 대한 애정도도 한층 높아진 것 같다. 여전히 무더운 산책로에서 새끼 손가락 하나 걸고 나란히 걸으면서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가족사에 길이 남을 대규모 가족 동원 관람 이벤트를 마치고 난 이후였던지 내 관상에 대해 계속 종알종알 떠들었다. 누나는 눈이 너무 커서 이상해, 누나는 턱이 뾰족해서 이상해왼통 내 얼굴의 이상함에 대해 늘어놓던 동생은 곧 내가 떠나고 난 후 자기에게 여전히 남아있을 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골몰하기 시작했다. "내일은 뭐하지?" 꽤나 골똘하게 저에게 허용된 긴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모습이 웃겼다. 어린애 하나가 .. 더보기
달을 보다 우리는 슬픔에 대해서 얼마나, 어디까지 애도할 수 있고 애도해야 하는 것일까? 마음 속에 차려진 작은 납골함을 부숴 흔적조차 없게 만들 때까지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몫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나. 생의 의무라는 큰 빚을 지고 있는 우리는, 분연히 눈물을 훔치고 똑바로 일어서야 하지만 생애는 생각보다 방만하고 기억은 생각보다 섬세하며 해학은 생각보다 약효가 짧다. 씌어져서 흩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쓰고 또 쓸 것이다. 완벽한 상실을 감당하게 될 때까지 나는 아직 더 현명해져야 하나보다. 둥근 달이 떴다. 밤이 일찍 찾아오는 고향집에서 나는 가족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설거지를 했다. 내일은 강바람을 쐬고, 이야기를 나누고, 과일을 깎고, 이야기.. 더보기
나의 쓸모 요조의 새 앨범. 직설적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번 앨범만큼은 틈틈이 듣고 있다. 어젯밤 꿈에는 친구 L이 나왔다. 아직까지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류이치 사카모토 피아노 앨범을 처음으로 추천해준 친구인데 잊을 만하면 연락이 와서 꿈에 내가 나왔다고 하곤 했다. 꿈에 네가 나왔어, 라며 내가 연락할 차례인가. 바람이 멈춘 태평양처럼 잔잔하다. 햇살이 내리쬐는 교정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도톰한 신문을 손에 들고 천천히 걸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낯익은 얼굴들 몇몇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건조한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더보기
윤상을 사랑하는 남자 개강 전의 마지막 화려한 휴가를 보내고 어느덧 학기도 일주일차로 접어들었다. 육체적으로 지치는 하루하루지만 그래도 요즘은 나름 한껏 정신적으로 고양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소에 늘 읽고 싶었던 니체도 원없이 읽을 수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좋은 사람들도 생겼고 수업들도 죄다 재밌는데다가무엇보다 바로바로.... 가을이다. 나는 가을의 광팬이다. 순전히 가을에 관한 노래가 많다는 이유로 어떤 재즈 앨범을 구매하기도 했다. 곤충에 썩 관대하지 않은 편이지만 가을 곤충의 대명사 잠자리는 꽤 귀엽게도 느껴진다.(게다가 최근 알게된 사실인데 심지어 잠자리의 주식이 모기라고 한다. 이런 유용한 곤충이라니!) 가만히만 있어도 절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을 머금게 하는 가을 공기를 사랑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더보기
그런 날 한바탕 욕지기를 퍼붓고 싶을 때가 있다. 행복론을 설파하던 그저께가 무색하게도.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생체시계가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났다. 커피도 나름 끊어보려했으나 떨어지지 않는 두통탓에 카페인을 또 쏟아부었다. 커피 탓만은 아니겠지. 낮밤이 제대로 얼른 돌아와야하는데. 선선해지나 싶었는데 집에선 어김없이 덥다. 짜증나서 전력난이고 전기세고 뭐고 에어컨을 빵빵 틀었다. 중도 방역이 끝났는지 득달같이 도서반납일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했다. 니체책 몽땅 반납하고 지젝책은 연장해야겠다. 이제 개강까지 일주일 남았다. 스터디도 충원해야하고 자소서도 써야하고 졸업논문도 이제는 정말 써야하는구나. 갑갑한 마음을 잠시 유예하고 주말에는 친구와 등산을 가기로 했다. 심호흡하고 힘내야겠다. 그래도 이제 앞머리가 얼추 .. 더보기
사소한 행복론 날씨가 선선해졌다. 엊저녁엔 나의 열렬한 독자이자,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한 동네 친구랑 밤중 산책을 나섰다. 갈수록 높아지는 범죄율 얘기를 하면서 둘다 바짝 긴장해 있으면서도 기분 좋게 밤길을 걸었다. 행복에 대해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봐도 나는 함께하는 '사람'에 행복의 지분을 의탁하는 면이 크다. 집에 틀어박혀 책 읽고 신문 읽고 미드 보며 끄적이는 걸 좋아한다고 하기는 하나 역시 아무래도 마음 맞는 사람들하고 함께 있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서서히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재밌다.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그 사람의 아름다움이나 선함을 발견하게 될 때면 흐뭇하고 마음이 꽉 차 오른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만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시간이 많아서인지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 더보기
어떤 조사(弔詞) 최신 기기 사용계 얼리 어답터류의 중간층을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올해 초는 기억될 만한 시기다. 드디어 오랜 '나에게 보내기' 메일 사용 지상주의를 탈피해 USB를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생애 첫 USB 구매를 앞두고 내 전화를 받았던 한 공대 친구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어디 가면 다 공짜로 주는 건데 너 지금 뭐하는 거냐는 심드렁한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엄지손가락 만한 빨간색 USB가 내 손 안으로 들어온 순간 최첨단 주류 사회에 진입한 듯한 쾌감을 막을 수는 없었다. USB에 대한 신뢰는 각별했다. 깜찍하게 생긴 이 작은 부속품이 내 동선의 상당 부분에 효율성을 더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USB는 현대 대학생의 가장 큰 고민이라 할 수 있는 과제물 인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일분 일초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