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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위된 기억 카스테라저자박민규 지음출판사문학동네 | 2012-03-20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무규칙 이종 예술가’ 박민규 첫 소설집 『카스테라』 2003년... * 소설집 『카스테라』 중 단편 「갑을고시원체류기」에 대한 서평 ‘3.3’. 어느 일간지 입사 시험의 키워드였다. 시험은 키워드를 본 수험자들이 저마다 자유롭게 취재 후 기사를 쓰는 방식이었다.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는 숫자였지만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에게는 꽤 명료한 지칭이었다. 평균 3.3 평방미터의 공간. 고시원이다. 고시원에 고시생만 살지 않게 된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여기저기 비정규직을 떠돌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고시촌에 기거한다. 아니, 사실 기거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시원은 시급 노동을 끝내고 날마다 일.. 더보기
오! 월이다 좋아하는 선배한테서 연락이 왔다. 언제쯤 술을 얻어먹을 수 있냐고. 요즘따라 기운들이 없는 모양이었다. 슬픈 하루들이 반복된다고 했다. 나도 별달리 기운차릴 일 없는 나날들이지만 선배는 기운 내시라고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선배는 희망을 만들고 계시잖아요, 라고 말했다. 선배는 술 한잔 하고싶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다시 한번 나에게도 기운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우리가 기운을 내야 한다. 희망은 좋은 말이다. 죽으나 살으나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야 하는 한 재건할 수밖에 없다. 더 좋은 곳으로, 더 나은 곳으로 재건할 수 있다. 재건해야 한다. 희망해야 한다. 어쩌면 나보다 더 이상주의 성향을 가진 다른 선배가 있는데 한동안 이 선배와는 얘기를 많이 하지 못했다. 공감 능력이 탁월한 이 선배도 무진 속을 .. 더보기
두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 이번주는 장례식 두 번, 결혼식 한 번이 있다. 어제는 꽤 오랜만에 혜화에 다녀왔다. 아는 선배의 장례식. 집에 돌아와 검은 정장 투피스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장례식으로 대학로를 간 건 처음이었다. 상복을 입은 친구 둘과 함께 왁자지껄한 청년들 틈 사이로 병원을 향해 걸어갔다. 장례식장이 대학로에 있다니 어색했다. 생사가 담장 하나 차이였다. 술 한잔 같이 했던 선배였지만 절친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사이였다. 갈 것인가. 고민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선배 얼굴이 선명해 안 갈 수가 없었다. 반가운 얼굴들도 꽤 보았다. 빈소에 모인 친구들도 나랑 처지가 비슷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우울증이 이 선배의 장례로 정점을 찍었다. 우울했을 것이 틀림없는 친구들이 저마다 먼 선배의 영정 앞에 절.. 더보기
세월호 침몰 사건 단상 손으로 일기를 쓰자고 다짐한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뭔가를 쓰고 싶을 때면 꼭 넷북을 펼쳐들게 된다.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했다. 오전 8시 30분경 바다에 잠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다에 있다. 내내 울리는 속보 알람들과 방송으로 보이는 가족들의 탄식들 속에서 어이없게도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그저 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갑갑하고 허무하고 마음이 미어졌지만 어이없게도 내가 지금 이 순간 진도에서 현장을 목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참담했다. 초동 구조 작업 미흡과 책임자 엄벌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퍼붓고 있다. 보험금 수령 액수를 보도했던 mbc도 cnn의 수온에 따른 생존시간 보도와 비교당하며 줄차게 까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두 달 전 .. 더보기
부식타임 점심을 안 먹었다. 집에 쌓아둔 책 외면하고 또 빌려서 읽는다. 김두식 교수 책 첫 읽기. 더보기
@재즈앨리 조정희 보컬과 함께 한 빌에반스의 밤 더보기
만남들 한량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어디든 마음대로 가고 누구든 만나면서 '공부'의 명목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신문을 줄치며 읽는 것도, 원고지에 글을 박박 쓰는 것도 질리던 차였다. 어딘가 나갈 좋은 계기가 필요했는데 오늘은 두루 좋은 날이었다. 점심 때는 인턴 동기들과 우리를 총괄했던 분과의 식사 약속이 있었고 오후에는 재미있는 글을 쓰는 논설위원의 강연과 뒤풀이가 있었다. 하루를 오롯이 시청역에서 보냈다. 인턴이 좋은 점이 많다. 식구가 아니라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물론 더 크지만 식구가 아니라서 환대받는 점도 분명 있다. 우리는 오늘도 '꿈'을 팔아 선배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쥐어드렸다. 사회생활은 많은 것들을 거래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반가움으로 포장한 절박함이 오늘도 동기들의 얼굴을 덮었다.. 더보기
다시 추워진 토요일 도서관에서 낡아빠진 김영하 소설집을 빌렸다. 독자들에게 이렇게 낡아빠지도록 읽힐 수 있는 작가라면 글 쓸 맛이 날 것 같다. 책 군데군데는 몇 번 째 빌렸는지 모를 어떤 사람의 추임새가 연필로 적혀있었는데 자기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줄을 긋고 "ㅋㅋㅋ"를 적거나 하는 식이었다. 직접 코멘트보다는 밑줄이 더 많았다. 추운 나라의 말을 배웠다. 는 표현에 밑줄을 긋고 "ㅋㅋㅋ"를 적어두었던 그는 같은 글씨체로소설 마지막 장에서 손에 힘을 빼고 스치듯 연필로 "호출에 비해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 깊이에 있어서는 좀 더 얕아지고 산업적으로 변한 것 같다"며 나름의 일갈을 해놓았다. 빌린 책에 자신의 감상을 쏟아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선 연필을 들고 적어도 뭔가를 써내려갈 수 있는.. 더보기
엄마한테 잘하자 나쁜 년들은 힘들 때만 연락한다. 나도 나쁜 년이라 평소엔 도서관이다, 스터디다, 앞에 사람있다, 밥 먹는다, 지각이다 등 각종 이유로 전화도 황급히 끊거나 잘 안 받으면서 우울하거나 짜증날 때만 엄마를 먼저 찾는다. 그러다보니 엄마가 읽고 듣는 내 얘기엔 짜증난, 우울한 이야기들이 많다. 요즘은 가끔 여자로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원래부터 여자였는데. 나는 나쁜 년이라 '가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인간 몫의 숨을 쉬었고 밥을 먹었을 엄마의 육체를 생각했다. 엄마의 코와 손가락과 머리카락과 발가락을 생각했다. '부모'라는 어떤 부채를 나는 엄마에게 두 세배로 받아내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동안 팟캐스트를 들으며 울컥 목울대가 막혔다. 발 얘기였다. 발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 더보기
박문각 시사상식과 박민규 사이 좋은 카페의 좋은 자리를 찾았다. 3분마다 떡볶이를 휘젓는 아줌마와 그 옆에서 성경 공부를 권하는 양복입은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좋은 시절이다. 이제 구형으로 전락한 내 핑크색 넷북과 거대한 사이즈의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으면 그럭저럭 시간은 잘 간다. 조앤 롤링처럼 해리포터 시리즈라도 써내야할 것 같다. 쓸모 있는 것을 쓰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새내기들의 바퀴벌레같은 구동력을 핑계삼아 수업 전 읽을 책들을 구하는 서점 순례를 매주 떠나고 있다. 중도는 일찌감치 털렸다. 전자책까지 죄다 쓸어갔다. 학기초의 이 열정은 아마 꽃망울이 터지는 4월 초쯤이면 다소 수그러들 것이다. 낯익은 책 제목들을 볼 때마다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들어 표지 사진을 찍어대는 습관도 익숙해졌다. 읽고 싶은 책이 많.. 더보기